장강의 물살처럼 거센 정보통신혁명 속에서, ‘닷컴의 엘도라도’로 입성하기를 꿈꾸는 ‘벤처의 군웅할거시대’. 그들에게 영웅이라면 아마도 빌 게이츠나 손정의 정도일 성 싶다. 하지만, 정보통신 혁명 속에 탄생한 시장의 영웅은 범접하기 힘든 역사의 전담자가 아니라, 자신보다 한 발 앞서 간 사람으로서 따라잡을 대상이다. 어느 교수가 말했듯이 아이디어와 운이 따르다면 영웅이 될 수 있는 시대에서 ‘시장의 영웅’은 모방의 대상이자 시기심을 유발하는 인물이다.이런 흐름에서 본다면,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영웅을 다룬 ‘영웅의 역사’는 향수에 젖은 영웅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뭇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영웅들은 민중의 고난을 타파해주는 구세주로 혹은 예언자로 나타나기도 했다. 때론 과도한 카리스마로 인해 민중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며 광기어린 전쟁도발과 모략과 술수 등 반인륜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일상의 규범을 넘어선 자리, 도덕을 초월하는 자리에서 도덕을 주재하는 그 영웅들은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민중의 집단적 염원의 담지자였는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시장의 영웅’과 달리 삶의 궁극에서 인간행동과 의식을 전면적으로 끌어내 펼쳐내는 ‘역사의 영웅’은 범인(凡人)의 영원한 테마일 것이다.
전 10권으로 완간된 ‘영웅의 역사’는 일본 최고의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 창사 9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중국의 군웅’을 번역한 책으로, 격변하는 역사의 흐름에 몸을 던졌던 중국 영웅 32인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19년간의 망명과 유랑 생활 끝에 춘추시대 패자로 군림했던 진(晉)의 문공(文公),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고사성어를 탄생시킨 오왕 부차(夫差)와 월왕 구천(句踐). 합종과 연횡이란 각본으로 전국시대 일곱나라를 요리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 진나라의 분열 속에서 패권쟁탈을 벌였던 항우(項羽)와 유방(劉邦). 이젠 신화가 돼버린 ‘삼국지’의 주인공들, 조조(曹操)·손권(孫權)·유비(劉備)·제갈공명(諸葛孔明) ·관우(關羽) 등. 한 무제(武帝), 당 태종(太宗), 칭기즈 칸 등 수많은 군웅들 속에서 대두해 대제국을 세운 황제들. 수 양제(煬帝), 송 휘종(徽宗) 등 과도한 카리스마로 혹은 황제에 걸맞지 않은 재능으로 나라를 패망시킨 망국의 황제들. 무칙천(武則天), 양귀비(楊貴妃) 등 세상을 뒤흔든 여인들. 중국 3,000년의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이 10권의 책 속에서 살아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다시 그려낸다.
특히 이 책은 ‘사기’ ‘삼국지’ ‘초한지’ ‘열국지’ 등 ‘이십오사(二十五史)를 기본토대로 한 철저한 문헌검증과 고고학적 자료를 통한 고증으로 영웅의 생애를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다. 민담과 설화, 소설 속의 각색된 영웅이 아닌 실제 역사 속 영웅들을 냉정하게 그려냄으로써 영웅의 삶을 더욱 또렷하게 짚어보게 했다. 일테면 제갈공명이 불세출의 군사(軍師) 로 전해져 내려오지만 임기응변의 전략전술에는 부족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집필진은 일본 지성계를 대표하는 저명한 중국사학자, 소설가, 평론가들로 구성돼 각 인물들을 한 명씩 맡았고, 일본의 대표적 역사 소설가인 진순신(陣舜臣)과 오자키 호츠키(尾崎秀樹)가 책임편집을 맡았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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