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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의미·실체 되짚어

입력
2000.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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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새장편소설 '아가'“요즘 말하는 ‘공동체’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가. 지금은 사라진 옛적 우리의 마을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라는 것을 생각해보고 싶었다.”

소설가 이문열(52)씨가 신작 장편소설 ‘아가(雅歌’(민음사 발행)를 발표했다. 그를 페미니즘 논쟁에 휩싸이게 했던 ‘선택’ 이후 꼭 3년만에 내놓은 소설이다. 그 사이 그는 12권에 달하는 장편 ‘변경’을 개작해 완성했지만, 가족사와 관련된 일로 오랜 고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최근에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발언으로 또 다른 시비에 잠깐 휩쓸리기도 했다. 그는 “지난 3 년 내 내면은 실로 괴이쩍은 질풍노도에 휩쓸려 있었다. 소모였고 낭비였다. 이제 그것이 진지한 문학적 투입으로 전환될 것을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라는 부제를 붙인 ‘아가’는 역시 이씨의 소설적 소재에 대한 선택, 그가 가진 글쓰기의 특징 등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다. 주인공은 ‘당편이’. 어원을 쉬 짐작할 수 없는 이 이름을 가진 여자는 해방 이듬해 춘삼월 열대여섯 살쯤 났을 때 이씨의 고향에 버려졌다. 소아마비 탓으로 손발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고, 지능은 예닐 곱 살 난 아이 같았으며, 구루병 증상으로 목이 짧고 등이 굽어 어깨가 귀 가까이까지 솟았으며, 유인원 같이 길쭉한 얼굴이 가슴께까지 닿아있었다.

이 당편이를 둘러싸고 마을에서 벌어진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오늘의 시점에서 회상된다. 마을 청소년들의 성적(性的) 호기심의 대상, 전쟁통에는 여맹위원장이 되었다가, 장사 ‘황장군’과의 사랑, 그리고 나이 쉰을 훌쩍 넘어 만난 건어물장수에게서 여자로서의 행복을 알게 되는 주인공. 이씨의 입심으로 되살아난 수많은 구전(口傳)의 에피소드들로 소설은 재미있다.

이씨는 “내가 이만큼 글을 쓰는 것도 고향을 잘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과거 우리 누구나를 감싸안았던 공동체의 이야기다. 왜 하필 장애인인 당편이가 주인공인가. 누구나 기억하겠지만 그 시절 우리 마을에는 꼭 한두 사람의 이른바 ‘바보’혹은 ‘반편’이 있었다. 그들의 바깥에는 생산적 노동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역시 심신이 온전치 못한 장애자들이 있었고, 더 바깥에는 완전한 심신의 상실자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우리 곁에 있었고 우리와 함께 세상을 이루었다”는 이씨는 그 시절의 공동체 구조를 ‘양파’에 비유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한껍질 한껍질을 이루는 맨 안쪽에 소위 정상인들이 존재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모두가 정상인이다. 온전하지 않으면서 온전하다고 우기는 정상인들이 꾸려가는 공동체이지만 그 한껍질만 벗겨내면 이 공동체는 완전히 해체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이씨가 이번 소설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한 사회적 존재가 단지 ‘거기에 있다’는 것뿐 아니라 ‘거기에 속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어떤 기호(記號)로 존재하는가를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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