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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이사람] (8) 축구 국가대표 최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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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이사람] (8) 축구 국가대표 최용수

입력
200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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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이사람’ 시리즈 이번 회에 소개된 최용수선수는 3월11일 게재된 탤런트 주진모씨가 추천했습니다.추천이유 : 새천년에 가장 주목받는 스포츠 종목은 축구다. 축구선수 중 최용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 의 골게터다. 특히 지금까지 굴곡없는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 2002년엔 대표팀의 간판골잡이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성실성과 집념이 강해 반드시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축구계의 재목이다.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는 21세기를 여는 최대의 국가적 행사로 그 의미와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면에서 축구스타들의 역할과 관심도는 점점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축구의 특성상 모든 대회의 공과는 ‘골게터’에게 집중된다. 스트라이커 최용수(27·안양 LG)선수가 벌써부터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현재 위로는 황선홍(32·포항) 김도훈(30·전북), 아래로는 안정환(24·부산) 이동국(21·포항)과 경쟁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나이로 볼 때 그의 기량은 2002년에 최절정기에 오를 전망이어서 축구계가 거는 기대는 누구보다 크다.

“선수로서 절정기에 국내에서 월드컵을 치른다는 것은 무엇에 비교할 수 없는 행운입니다. 그러나 현재로선 선후배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나라가 개최국으로서 좋은 성적을 올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각오뿐입니다.”

그는 과묵한 성격이다. 그래서 항상 겸손하다. 하지만 그가 한국스트라이커의 계보인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의 뒤를 이을 스타플레이어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연세대 3년 때인 1992년 청소년대표로 발탁, 96년 애틀랜타올림픽대표를 거쳤다. 올림픽대표시절엔 ‘최용수 있으면 골 넣 , 없으면 못 넣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국가대표 데뷔전은 97년 5월 한·일전. 단 15분간 교체멤버로 출전했지만 차범근감독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줘 단숨에 주전자리를 꿰찼다. 곧바로 홍콩과의 월드컵 아시아지역 조예선서 국가대표 데뷔골을 2골이나 넣었다.

그 해9월 시작된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서는 6경기서 7골2어시스트를 기록, 월드컵본선 4연속 진출에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았다.

지금까지 대표팀서 기록은 45경기 출전에 25골. 그의 성실성과 활약도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 멕시코와의 첫 경기 때 엔트리에서 빠지자 국내여론이 차범근감독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일 정도로 기대가 컸다.

그후 남은 두경기에 출전했지만 98년 월드컵은 그에게 후회로 남아 있다. “벨기에전에서 여러차례 골찬스서 실수, 월드컵서 1승을 놓친 것이 지금도 부끄럽 한이 됩니다. 당시 큰 무대에서 세계적인 스타들과 경기를 한다는 사실에 주눅이 들었던 게 부진한 플레이의 원인이 됐습니다.”

그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2002년을 준비하 있다. 올시즌 프로선수중 최 액인 연봉 2억8,000만원에 승리수당 300만원의 조건으로 계약, 각오가 더욱 새롭다. 지난해 에이전트의 잘못으로 잉글랜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입단이 좌절, 5개월여의 방황기를 거친 그는 “기회가 주어지면 올해 유럽에 진출, 2002년 월드컵의 밑거름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유승근 기자

usk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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