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뛰어난 업적으로 후세에 귀감이 될 만한 여성이 많다. 최근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정치적 진출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할 때 지폐 인물로 여성이 등장할 때가 됐다고 본다. 과거에 우리 여성이 화폐에 등장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100원 주화에 이순신(李舜臣) 1,000원 지폐에 퇴계(退溪) 이황(李滉) 5,000원권에 율곡(栗谷) 이이(李珥), 1만원권에 세종대왕 등 모두가 남성이다.외국에서도 여성이 등장하는 돈을 자주 보았다. 이런 돈을 보면 그 나라가 여성을 어떻게 배려하고 있는지 짐작이 돼 부러웠다. 21세기는 여성의 세기라고 한다. 말로만 여성을 평등하게 한다고 하지 말고 화폐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쓰는 것이 어떨까. /최규정·서울 성북구 돈암동
조선 후기 상평통보가 발행돼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화폐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우리 돈에 특정한 여성이 등장한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1962년 5·16기념으로 저축하는 어머니와 아이를 모델로 한 100환권 지폐가 나온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 당시 영부인이던 육영수(陸英修)여사를 모델로 했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달여만에 발행이 중단됐다.
우리나라에서 화폐 디자인을 총괄하는 곳은 한국은행. 따라서 화폐의 소재 인물을 바꾸려면 한국은행장의 발안이 있어야 한다. 발안된 변경안은 정부의 승인과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이 떨어져야 최종적으로 확정된다. 한국은행 발권국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몇차례 여성 위인의 초상을 화폐 소재로 사용하는 것을 검토했다. 신사임당(申師任堂) 유관순(柳寬順) 등이 거론됐는데 그때마다 한국은행 내부나 관련 자문위원회에서 거부됐다. 한국은행은 앞으로 2만,5만,10만원권 지폐가 새로 발행되거나 기존 지폐의 소재 인물을 교체할 때 다시 한번 여성 위인의 모델 채택을 검토할 생각이다.
외국도 특정 여성을 화폐 모델로 선택하는 데는 인색한 편이다. 가장 활발한 나라는 독일. 통일 직후인 1990, 92년 두차례 화폐정리 때 작가 화가 건축가 철학자등 문화예술인이 포함됐는데 8종의 지폐 가운데 5마르크권에 낭만주의 문인 베티나 폰 아르님(1785-1859), 20마르크권에 사실주의 시인 아네트 드로스테_휠스호프(1797-1848), 100마르크권에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1819-1896), 500마르크권에 과학자 겸 화가인 마리아 메리안(1647-1717) 등 절반이 여성의 초상으로 채택됐다.
영연방국가들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을 담은 화폐가 많다. 영국의 경우 1960년대부터 1,10,20,50파운드 등 모든 지폐에 엘리자베스 2세의 얼굴을 집어 넣었다. 뒷면에는 영국 출신 위인들의 초상이 들어갔는데 한 때 여성인 나이팅게일이 포함되기도 했다. 현재 10파운드권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1812-70), 20파운드권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1791-1867) 등 뒷면의 인물은 모두 남성이다. 주화에도 엘리자베스 2세의 흉상이 들어가 있다.
프랑스는 50프랑권에 소설가 앙트완 생텍쥐베리(1900-44), 100프랑권에 화가 폴 세잔(1839-1906) 등 모두 남성이었다가 1993년 처음 발행된 500프랑권의 모델로 물리학자 마리 퀴리(1867-1934)를 남편 피에르 퀴리(1859-1906)와 함께 채택했다.
미국은 최근 기념주화를 발행하면서 여성 위인의 초상을 넣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보수주의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불특정한 인디언 여성을 모델로 결정했다. 중국은 여성노동자와 소수민족 여성을 지폐 인물로 쓰고 있으나 특정 여성을 소재로 한 화폐는 없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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