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계에선 손이 예쁜 사람은 손 부분만 내비치는 손모델이 있다. 영화에선 주인공을 대신해 얼굴은 내비치지 않고 정사 장면을 찍는 대역 배우가 있다. 영화 ‘원초적 본능’의 격렬한 정사 장면에서 비치는 뒷모습은 여주인공 샤론 스톤이 아니라 대역 배우였다. 그럼 드라마에도 대역은 있는가?아빠는 왜 손만 나와?
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는 MBC 월·화 드라마 ‘허준’ 에서 허준 역을 맡은 전광렬이 기가 막히게 침을 잘 놓는다. 한의원 근처에도 못간 예진 역의 황수정은 맥을 정확하게 잡을 뿐 아니라 원숙하게 한약 조제를 하고 침까지 놓는다. 한의사들마저 경탄하는 침 실력이다.
하지만 침을 놓는 손은 전광렬과 황수정의 손이 아니다. 동국대 한의학과 장준혁 교수를 비롯한 한의사 7명의 손이다. 장교수의 말. “‘허준’에 출연한다고 했더니 아이가 아빠는 얼굴은 안 나오고 왜 손만 나오느냐고 물어봐요. 머쓱했지만 한의학을 정확하게 알리고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출연하고 있어요.”
대역과의 조화가 중요하다
지난해 교향악단을 무대로 젊은 단원들의 사랑을 그린 SBS 수·목드라마 ‘크리스탈’ 은 철저하게 시청자의 외면을 받았다. 실패 원인 중의 하나가 대역과 실제 연기자의 부조화였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의 실제 주인공은 방송사 관현악 단원이었다. 단원이 연주하는 손모습에 이어 곧 바로 전신이 나오며 연주하는 김남주의 손놀림은 음악과 전혀 맞지않았다.
요즘 인기를 모으고 있는 MBC 수·목드라마 ‘나쁜 친구들’ 9일 방송분에서 여주인공 송윤아와 김지수의 피아노 연주 장면이 나왔다. 피아노를 잘 치는 송윤아는 대역없이 직접 연주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하지만 피아노를 못치는 김지수는 대역을 썼다. MBC 예술단원이 연주하는 장면을 녹화한 뒤 김지수가 음악에 맞춰 연주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장용우 PD는 편집과정에서 단원의 손과 김지수의 연주 장면을 매끄럽게 연결시키기 위해 30분 동안 고심했다.
대역 전문 연기자
드라마에서 이처럼 신체의 특정 부위 만을 대역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전문 대역 연기자도 있다. 매맞는 장면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량폭파 등 위험한 상황에서 연기를 대신하는 스턴트맨까지 다양하다. 대역 연기자를 구하는 것은 방송사의 섭외 담당자나 조연출자의 몫.
피아노 연주 같은 전문적 기능의 대역이 필요한 경우는 직접 직장 등을 찾아가 부탁하고 스턴트맨은 한국무술연기자협회 등 관련 단체에 연락해 대역 연기자를 구한다. 이들은 얼굴 한번 화면에 비치지 못하고 다치는 경우도 많다. 또 침을 놓거나 매를 맞는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촬영장에서 4-5시간을 대기하는 어려움도 있다. 대역의 난이도에 따라 출연료는 차이가 있지만 평균 10만원선이다. 하지만 대역 출연자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매맞는 역 만을 대신해 주는 보조 연기자 이정우씨의 말.“가족이나 남들은 안쓰러워해요. 하지만 저도 전문가입니다. 내 모습은 나오지 않지만 시청자들이 진짜로 맞는가보다 생각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