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장애인 '장애 이기는...'책 출간아직은 아마추어이고, 그래서 어설프다. 그렇다고 기념으로 한 권 찍어낸 자족적인 책인 것만은 아니다. 장애를 딛고 전문 만화가가 되기 위한 도정, 그 땀방울이 맺힌 결실이다.
최근 자연사랑 출판사에서 나온 ‘장애를 이기는 희망의 펜대’는 전문 만화가로 자립하고자 하는 장애인 9명과 그들을 가르치는 만화가 4명이 그린 만화 모음집이다. 장애인으로서 느꼈던 아픔과 사랑,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사를 솔직담백하게 그렸다. 물론, 그림들은 거칠고 엉성하다. 끝까지 읽기에 인내와 아량이 요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막 자기 일에 눈 뜨가는 만화 지망생들의 필체는 자못 순수한 그 무엇을 남긴다.
몇몇 작품에서는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언어장애인 김지현씨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교통사고를 당한 연인을 위해 자신의 다리를 헌신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다리’를 교량에서 육체의 의미로 변환시킨 재치가 녹록찮다. 지난해 전국장애인 만화 공모전에서 카툰 부분 대상을 받았던 지체장애인 마태식씨의 시사만평은 날카로운 사회적 안목을 보여준다. 생활고에 찌든 직장인의 얼굴을 그래프화한다든지 맞벌이 부부의 눈물을 하트로 형상화하는 재치는 기성작가 못지 않다. 뇌성마비 장애인 권세한씨의 만화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비뚤비뚤한 선에 “로보트가 맥주 먹는다. 기계 로보트가 왜 맥주 못먹냐? 맥주먹는다. 신기하다”식의 단순하고 엉뚱한 어법. 이들에게 만화는 장애를 이기는 ‘재활’프로그램일 뿐 만은 아니다. 딱히 취업하기 힘든 장애인들에게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감각과 재능만 있다면 프로까지 가능한 만화는 유효한 자립의 수단이기도 하다.
이들은 장애 종합복지기관인 ‘기쁜 우리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만화제작 작업장’의 훈련생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이 곳은 일종의 만화가 취업 준비장이다. 만화 수업을 받으면서 만화도 직접 제작하는데, 이번 작품이 그 첫 결실이다. 최근에는 금강교육개발에서 내는 초등학교 학습교재의 그림제작 주문도 받았다.
‘기쁜 우리 복지관’이 만화를 장애인과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로 삼은 계기가 된 것은 98년 ‘만화교실’을 열면서. 직업재활프로그램으로서 만화의 가능성을 깨달은 복지관측은 한국장애인 고용촉진공단으로부터 만화를 정식 기능훈련과목으로 국내에서 처음 승인받아 지난해 10월부터‘만화 기능훈련반’을 열었다. 복지관측은 만화관련 학과로도 진학시키기 위해 ‘대입준비반’도 모집하고 있다. 문의(02) 3665-3831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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