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담배소송’ 재판이 시작됐다. 말기 폐암환자 등 흡연피해자들이 국가와 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다.19세기말 정부가 담배전매를 시작한 뒤 100년을 훌쩍 넘긴 21세기 초입에 그 책임을 사법적으로 따지게 됐으니 ‘세기적 법정다툼’이란 언론의 표현이 그럴 듯하다. 재판결과 흡연 피해자들이 이긴다면 엄청난 파문과 소송사태를 몰고 올, 그야말로 세기적 사건이 될 것이기에 과장된 표현이나 기대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소송을 낸 원고측은 물론, 흡연을 혐오하는 많은 국민이 은근히 기대하는 판결이 그리 쉽게 나올 것 같지는 않다. 핵심쟁점인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부터 어렵다. 여기에 담배인삼공사와 국가의 고의적 불법행위 책임, 그러니까 담배의 치명적 해악을 알면서도 방관한 책임이 추가로 입증돼야 한다는 법조계의 견해다.
물론 원고측은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는 의학적·확률적 개연성이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또 국가와 담배인삼공사의 책임은 주의의무에 소홀한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외국의 예처럼 승소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선진국과 여러 사정이 다른 우리 현실에서 외국의 예를 근거로 소송결과를 점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선진국에서도 확정된 판례는 아직 없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를 소송과정을 그냥 지켜볼 일은 아니다. 판결을 기다리며 사회와 국가가 할 일을 마냥 미루기에는 흡연의 해악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담배와 흡연에 대한 국가정책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새로 정립하는 일이다. 국민건강을 책임진 국가가 그토록 해롭다는 담배를 아직 전매하고, 흡연피해 소송에 맞서 국민이 낸 세금을 쓰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다. 폐암환자 등을 위한 국립암센터를 짓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담배공사 민영화가 근본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연간 3조원의 세금수입에 매달려 국민건강을 외면하는 태도를 고쳐야 한다. 흡연율이 세계선두를 다투고 청소년 흡연이 격증하는데도 정부는 규제법률만 만들고 손놓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담배에 매기는 건강증진부담금을 올리자고 해도 재경부가 담배공사 민영화에 장애가 된다며 반대하는 현실이다. 이런 인식이라면 담배공장을 민간에 넘긴다고 갑자기 국민건강을 우선적으로 배려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흡연피해 소송은 그 결과에 관계없이 흡연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음을 상징한다. 정부도 더 늦기 전에 ‘담배집착’을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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