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가 각계 인사를 위촉해 구성한 총선보도자문위원회 첫 모임이 9일 오전 10시30분 한국일보 13층 송현클럽에서 개최됐다. 자문위원들은 장명수(張明秀)한국일보사장으로부터 위촉장을 받고 최공웅변호사를 위원장으로 추대했다.이어 열린 「4·13총선의 의미와 보도방향」을 주제로 한 간담회에서 자문위원들은 총선보도가 경마식으로 흐르지 않고 정책중심의 보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깊이있게 논의했다.
■발제=유선영위원 ‘총선보도 개선방안’
최근 ‘한국언론의 정치·선거보도’에 대한 논문을 통해 선거보도 개선방안에 대해 학계에 발표한 적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일보의 특성을 고려해 총선보도방안을 얘기해 보겠다. 우리나라 선거보도에서 항상 문제가 돼왔고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집중적으로 제기된 지적은 피상적인 보도, 불공정·편파 보도, 가십 스캔들 위주의 보도, 드라마화 등이다. 한 마디로 보도에서 선거이슈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이다.
이같은 보도가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취재원 중심으로 보도하는 데 있다. 정치인을 따라 다니며 이들을 밀착보도하다 보니 기사는 쉽게 지역주의로 흐른다. 밀착 취재하는 대상이 지역의 보스이기 때문이다.
사설에서 일부 지역주의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많은 기사들은 정치인들의 말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지역주의를 확대 재생산한다. 또 취재원 중심의 보도는 정치인들의 승리를 위한 전략과 게임에 초점을 두다 보니 기사가 헤게모니 중심으로 드라마틱하게 전개되고 결국 삼국지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런 보도의 결과로 유권자 역시 지역주의와 흥미 위주의 관점에서 선거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에 대해 각성을 촉구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는 거의 없다. 정치인은 비판할 수 있지만 독자인 유권자가 듣기 싫은 소리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선거보도가 취재원 중심이 되지 않기 위해 미국등에서 제기되고 있는 ‘퍼블릭 저널리즘’의 수용을 제안한다. 대중에게 정치적 주권을 돌려주는 대중주의적 보도를 하자는 것이다. 대중 사이에서 치열하게 제기되는 정치이슈를 추출하고 이를 중심으로 선거보도를 이끌어가는 것이 기본방향이다. 기사도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방식으로 작성해야 한다. 독자의 의견을 반영한다면서 교수 전문가 기업인 문화인 등 유명인사의 글을 싣지만 이들의 피상적인 이야기는 대중의 관심과는 무관하다.
물론 지나친 대중추수(追隨)주의가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권자의 소리를 전한다고 할 때 지역의 정치적 보스를 두고 “고향어른인데 비난하면 되남유”하는 식의 반응을 보도하자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 어떤 목소리를 어떻게 전할 것이냐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보도의 수준을 높이자는 것이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자리스트 발표가 대중주의적 보도의 전형이 될 수 있겠다. 낙천자리스트가 발표되자 각 언론이 앞다퉈 이를 보도했고 몇몇 정당도 시민사회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따라 리스트를 어느 정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대중의 올바른 판단이 언론에 반영되고 이것이 정치권을 견인한 사례이다. 그러나 선거가 본격화하고 4당체제가 되면서 이런 중요한 대중적 이슈는 자취를 감추고 지역주의와 경마식 보도가 되살아나고 있다. 취재원 중심의 사고를 뛰어 넘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4·13총선의 의미
최공웅변호사=이번 총선은 새천년 최초의 선거이다. 21세기 우리 정치문화가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이번에 제대로 선거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지역주의 파당주의가 판치고 금권선거가 이뤄진다면 우리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구태와 구정치가 청산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일보사가 이번 선거의 캐치프레이즈를 ‘비전 2000, 선택 4·13’으로 정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본다.
김용호교수=이번 선거는 1987년부터 꾸준히 진행돼온 민주화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10년 가까이 문민정부 여야정권교체 등이 실현됐는데 이번에는 이런 형식적 민주주의가 내용적으로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미시적으로 보면 이번 선거는 현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의미를 가지며 포스트DJ에 대한 대권 포석이 가시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승종교수=이번 선거는 시민의 선거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시민사회 성장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증폭 속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요구를 어떻게 반영하고 미래지향적으로 정치권을 개혁하느냐가 이번 총선에 부여된 임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일보사 공선협이 ‘후보 바로알기운동’ ‘유권자 다짐 1,00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도 이런 차원으로 해석한다.
■총선보도의 방향
이순원씨=집에서 신문을 많이 보고 있으며 특히 정치기사에는 관심이 많다. 지방지를 포함해 많은 신문들이 유선영위원이 발제에서 지적한대로 흥미·스캔들 위주로 드라마같이 보도하는 것이 사실이다. 취재원 중심의 보도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발제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경마식 보도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더라도 정책 위주의 보도에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정책 위주의 보도는 재미가 없다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정책을 재미있게 다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책기사를 쓰더라도 물밑에서 일어나는 현장분위기를 풍부하게 전달하면 흥미로운 기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승종교수=정치권의 물갈이를 중심으로 한 정책적 이슈가 선거초기를 주도했다. 그러나 취재원에게 관심이 집중되면서 선거이슈가 다시 지역주의로 넘어갔고 4당구조 정착이 이를 심화시켰다. 이 와중에서 시민사회도 한 쪽은 준법운동, 다른 쪽은 진보적 낙천·낙선운동으로 역량이 분산돼 이슈를 정책쪽으로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
언론은 시민단체 유권자 후보자 모두에 대해 정책적 이슈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계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취재원 보도나 정책보도 어느 한 쪽에 치우진 것은 편식이라고 본다. 신문이 취재원 보도를 안하면 중요한 뉴스를 반영할 수 없어 정보부족이 초래된다. 양쪽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선거보도량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고 본다. 보도량 증가는 취재원 보도와 정책보도를 조화시킬 때 오는 어려움을 완화할 수 있다.
김용호교수=취재원 보도의 경우에도 관심인물이 지나치게 한정돼 있다. 대선주자 위주로 취재와 기사가 편향된다. 지난번 총선때도 경기지역의 경우 기자가 한 번도 오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취재원 중심에서 유권자 중심으로, 대권주자 중심에서 지역구 중심으로 관심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지역구의 유권자 얘기를 다루는 것은 매우 좋은 아이템이 될 것이다. 유권자를 △투표권만 행사하는 경우 △당원 △자원봉사자 △재정후원인 등으로 세분화하고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기사 또는 기고로 반영하는 것이 좋겠다.
최공웅변호사=비록 비판적으로 다룬다 해도 지역주의를 더 많이 다루면 다룰수록 지역주의가 심해지는 아이러니가 문제다. 선거이슈를 지역주의에서 정책대결로 바꿔 놓기 위해 각 정당과 후보의 정책을 집중 보도해야 한다. 오랜
만에 여성문제에 대한 정책이 각 당에서 나와 한국일보가 9일자에 이를 실었다. 이런 것을 더 크게 취급하면 어떨까.
유선영위원=정책중심의 보도가 한국상황에서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문위원들이 정치인 보도와 정책보도를 조화시키자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혁신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경마식 보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유권자주의를 천명하고 정책중심을 선언해야 한다.
김이숙대표=이번 선거보도를 통해 정치적 무관심을 깨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도 정치적 무관심층에 속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 함몰되다 보면 정치를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규제를 당하다 보니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정치는 국민의 거울이 아닌가. 우리 정치가 뒤떨어진 것은 국민이 정치를 남의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의 지식인만 정치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대부분은 그냥 여기에 편승해서는 정치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기업인도 정치를 돌아보고 이웃을 보살피는 사회적 관심을 키워야 한다. 그런 점을 유의해 보도해 주었으면 좋겠다.
■총선관련 기획물
유선영위원=지역주의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좋은 기획아이템이 될 수 있다. 지역주의에 대한 간략한 역사와 여기에 연루돼 이득얻은 정치인들, 정치인의 지역주의적 발언과 입법활동을 다루고 주민들이 얼마나 지역주의에 동조해왔는가도 정확히 말해 주는 기획이다.
이렇게 해서 지역주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지역보스들은 지면에서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각 정당으로부터 정책을 받아 비교표도 만들었으면 한다. 이 경우 정당들이 홍보하고 싶은 것만 기사화할 우려가 있으니 주요 이슈를 신문이 정해 각 당에 정책을 제출토록 하는 것이 공정하다.
이순원씨=여론조사를 많이 실시하고 있으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시민들이 여론조사에 임할 때문이다.
/진행=임철순 편집국국차장/정리=이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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