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을 대하는 공공기관의 인식은 벽걸이 ‘달력’을 보는 수준입니다.”(월간 ‘미술’관계자)국회 방문객들은 1층 로비서부터 각층 복도, 방들마다 꽉 들어찬 ‘범상치않은’ 서화작품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게 마련. 벽면을 채우다시피한 작품들의 엄청난 크기와 유명작가들의 서명, 낙관 등…. 기증받거나 혈세로 구입한 이들 작품은 질과 양에 있어서 웬만한 화랑과 비길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문화재급 명품’들이 무지와 관리소홀로 이발소 그림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다.
국회 본관 2층 로비에 걸린 한국화 ‘백두산(장우석 작)’에선 먼지가 시커멓게 묻어난다. 감정가 1억원이 넘는 대작이지만 흡연장소에 걸려 있어 치명적인 담배연기에 항상 노출돼 있다. 140호실에는 조선시대 신위(申緯)의 ‘신자하칠언시(申紫霞七言詩)’ 영인본 12폭 병풍이 곳곳이 찢어진채 햇빛가리개로 쓰이고 있다. 심지어 복도에 전시된 40여점 가운데 태반은 유리조차 끼워져있지 않은채 먼지와 곤충의 배설물 따위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다.
국회가 소유한 미술작품은 모두 222점으로 조달청 신고감정가만 무려 26억9,000만원 어치. 그런데 이를 관리하는 직원은 단 한명으로, 그나마 전문가도 아닌 일반 사무직원이다. 관리나 청소는 고사하고 수시로 각 방 의원들의 주문에 따라 그림을 바꿔 걸어주는 일만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조달청에 따르면 이밖에 정보통신부 3,092점, 법무부 2,220점, 교육부 1,650점 등 공공기관 소유 작품은 총 3만여점. 그러나 실태는 국회와 다를 것이 없다. 각 부처의 경리과나 회계과의 용도계 등 직원이 일반 ‘비품’으로 관리하고 있다. 또 너무 많은 수량때문에 상당수 작품들은 온도나 습도조절과는 거리가 먼 지하창고 등에 다발로 묶여진채 쌓여져 있기까지 하다.
S문화재단 관계자는 “먼지는 습기를 빨아들여 그림을 변색·부패시킨다”며 “온도와 습도의 미세한 변화, 심지어 카메라 프래시에도 훼손되는 미술작품을 유리도 없이 방치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보존과학실 관계자도 “그림의 바탕인 종이나 비단은 미묘한 외부환경 변화에도 수축이완을 반복하지만 물감은 변화가 없다”며 “이 때문에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작품도 내부균열 등 중병에 걸려있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998년 ‘정부수립 50주년기념 정부소장 미술품전시회’에 관여했던 미술 관계자는 “조사결과 작품마다 미세한 균열이 심각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런 실태에 놀라 ‘미술품 어떻게 지킬것인가’라는 책자와 ‘미술품 관리를 위한 일반수칙’ 21개를 만들어 공공기관에 서둘러 배포했지만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공공기관 소유 작품 중 10%정도는 미술사적으로 가치있는 작품”이라며 “이런 작품들 만 이라도 일정연한이 지나면 미술관으로 이관해 더이상의 훼손을 막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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