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축일에 새로 ‘쇼와(昭和)의 날’이 생겨 날 모양이다. ‘쇼와’는 한반도 식민지배와 태평양 전쟁 참전및 패전 등 질곡의 일본 현대사를 이끈 히로히토(裕仁) 천황의 연호이다.현재 ‘녹음(綠陰)의 날’인 4월29일을 ‘쇼와의 날’로 고치는 대신 ‘녹음의 날’은 ‘국민의 휴일’인 5월4일로 옮기는 경축일법 개정안을 두고 6일 공명당이 찬성 방침을 굳힘으로써 자자공 연립3당의 의사가 일치됐다.
공산·사민당이 반대하고는 있지만 민주당에서도 찬성 의견이 많아 개정안의 이번 정기국회 상정·통과는 시간 문제이다. 개정안에 따라 2010년부터‘쇼와의 날’은 경축일로 정착될 전망이다. 역대 천황과 관련된 경축일은 많지만 연호를 직접 딴 경축일은 처음이다.
히로히토천황의 생일인 4월29일은 일본 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반영해 왔다. 그의 즉위 이듬해인 1927년에는 ‘장천절(長天節)’로 제정됐고 패전후 경축일법이 시행된 1948년에는 ‘천황 탄생일’로 고쳐졌다. 1989년 1월 그가 타계하며 아키히토(明仁)천황이 즉위하자 ‘천황 탄생일’은 아키히토천황 생일인 12월23일로 조정되고, 대신 4월29일은 논의 끝에 ‘녹음의 날’로 정착됐다.
자민·자유당을 중심으로 한 ‘쇼와의 날’추진파는 애초에 ‘녹음의 날’이라는 명칭이 히로히토 천황이 식물을 남달리 아꼈던 데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논의 과정에서 그런 고려가 있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그저 신록의 계절을 찬미하는 날 정도로 여겨왔다. 경축일법에도 ‘자연에 친근감을 느끼고 그 은혜에 감사함을 느껴 풍요로운 정서를 함양한다’고 적었을 뿐이다.
1989년만 해도 속맘을 감췄지만 이제는 드러낼 수 있다는 뜻일까. 보다 분명한 추진 이유는 개정안의 “전쟁의 참화를 거쳐 새로운 일본 건설의 초석을 놓고 경제 부흥을 이룬 쇼와 천황을 기리고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자”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전쟁의 과오보다는 히로히토 천황의 공적을 강조하는 연장선에서 국가 장래를 도모하자는 뜻이다.
헌법개정 논의와 함께 전후의 변화를 지우려는 움직임으로 강한 우경화 흐름을 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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