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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떠난 마임판 '언어의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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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떠난 마임판 '언어의 몸짓'

입력
200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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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머신·이몽2000언어의 본래적 의미를 파고드는 두 편의 마임극이 나란히 상연된다. 극단 창파의 ‘햄릿 머신’, 극단 마네트의 ‘이몽 2000’이 마임의 새 패러다임을 예고한다. 마임 하면 떠올리기 십상인 어릿광대 몸짓은 철저히 배제됐다.

‘햄릿 머신’은 역사의 진정한 발전에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는 남성 지식인의 철저한 자기 학대가 주축이다. 배우들이 나체로 출연, 씻김을 상징한다.

극의 시작과 마지막이 오필리어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갈갈이 난자된 모습이다. 맨 처음 부관참시돼 관에서 나온 오필리어가 극의 종지부에서도 관 속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모습은 붕대로 동여매진 미이라. 그러나 짧은 가죽 팬티 등 서양 창녀의 형상이다. 남성들이 만든 부정한 역사에 의해 더럽혀진 여성들을 상징한다. 남성 중심의 사회가 여성의 순수를 유린했다는, 페미니즘적 시각이다. 참시는 남성에게 능욕당했음을 의미한다.

연출자 채승훈씨는 삼베, 토속 옹관, 한국 촛대 등 한국적 소품으로 무대를 채웠다. 햄릿 역의 마임이스트 심철종씨가 무대에서 벌이는 일련의 행위들은 씻김굿에서의 샤먼의 작업이다. 이 극은 1979년 독일 극작가 하이너 뮐러가 기회주의적 지식인을 고발하기 위해 연출했던 ‘햄릿’이 뿌리.

이 극은 국내에서 ‘몸의 연극’의 효시가 됐던 작품이기도 하다. 1993년 국내 초연 당시 포스트모더니즘의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에는 남자 배우의 전라, 여배우의 상반신 나체 출연이라는 파격에 대한 논란도 섞여 있었다. 이번에도 5명의 남자 배우는 전라로, 3명의 여자 배우는 상반신 나체로 출연한다. 채씨는 이에 대해 “영혼의 씻김이란 의미를 선명히 전달하기 위한 장치”라 말했다. 9-4월 19일 씨어터 제로. 화-목 오후 7시 30분, 금-일 오후 4시 7시 30분. 월 쉼. (02)338_9240

이에 비한다면 창단 2년째의 마임 집단 마네트의 ‘이몽 2000’은 훨씬 부드럽다. 사랑 등 인간 관계 양상들을 몸짓으로 표현한 6편의 소품들이다. ‘Love Is’는 두 연인이 서로 만나기까지를 남녀 각각의 동작으로 나타낸다. 김소월의 시를 텍스트로 한 ‘진달래꽃’은 다가설 듯 멀어지는 남녀의 고전적 사랑이 주제. ‘Last Temptation’은 군신간의 의리와 배신을 광기의 칼춤으로 그린다. 요즘 일상을 그린 ‘현대인’, 삶을 한판의 장기로 비긴 ‘장이야’도 함께 펼쳐진다. 김봉석 작·연출, 최혜숙 등 6명 출연. 3-12일 강강술래극장. 월-목 오후 7시 30분, 금-일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02)525-9644

두 편 모두 언어를 표현 매체의 하나로 원용, 독특한 맛을 낸다. ‘햄릿 머신’에서는 언어라기보다 음절이다. 예를 들어 “죽, 죽, 죽느냐…사, 사, 사느냐…그것…이”라는 식이다. 이에 비해 ‘마음으로…’에서는 좀 더 언어 답다. 여자가 “영화보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곧 남자가 말한다. “연못가에 똥이 쭉 깔려 있더라”고. 서로 대화하지 못하지 못 하는 언어 다발들은 갖가지 언어가 난무하는 이 시대, 언어의 불모성을 상징한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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