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 바람이 불고 있다. 4,5일 한국종합전시장(COEX)에서 열린 제10회 해외유학·어학박람회에는 이른 아침부터 장사진이 형성돼 하루 3만명이 넘는 유학 희망자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한국학생 유치를 위해 박람회장에 부스를 마련하고 직원을 파견해 열띤 선전활동을 한 학교가 21개국 300개가 넘는다는 사실이 이번 행사의 열기를 말해주기에 충분하다. 7일부터는 부산에서 11개국 130여개 학교가 참여하는 행사가 열릴 예정이어서 조기유학 바람은 전국으로 번져갈 태세다.열번째 열린 이번 행사에는 초등학교와 중·고교 학생들을 해외로 내보내려는 학부모들이 많이 몰려들어 그동안 묶여있던 조기유학 바람을 예고해 주었다. 어학연수 유학 등의 명목으로 겨울방학중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한 사람이 3만명이 넘는다니, 조기유학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조만간 조기유학 규제를 철폐하겠다는 정부의 입법예고까지 나온 터여서, 지금까지 특권층과 상류층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던 조기유학이 중산층으로 확산될 추세다.
아직은 조기유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유별난 평등의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해외유학, 특히 조기유학은 가진 자들의 특권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해외유학 붐이 외환위기의 한 원인으로 거론됐던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국제통상이나 개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 국경이 없어져버린 시대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 국가이익과 민족성을 앞세우는 것은 탈(脫)시대적 발상이기도 하다. 인터넷문화공동체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어학실력 습득과 창의성 계발을 위해 일찍 해외로 나가겠다는 욕구는 막아서는 안될 시대의 흐름이다. 다만 누가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식의 경쟁적인 유학 열풍이 걱정이다.
또 한가지는 열악한 우리의 공교육 환경과 조기 유학붐의 상관관계다. “과외시킬 돈으로 조기유학 보낸다”는 핑계가 설득력을 얻게 되면 우리 교육의 앞날은 없다. 좀 무리해서 조기유학 보내길 잘했다는 말들이 나오기 전에 실추된 교육의 신뢰성을 되찾아야 한다. 모든 학생을 하향평준화하는 중등교육 시스템의 전환에서,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특기를 발굴해 창의력을 길러주는 교육내용의 개혁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교실붕괴가 아니라 교육 그 자체의 붕괴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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