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전의 한 연구자는 벤처캐피탈의 요청으로 바이오벤처기업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동통신기기 생산업체인 이 기업은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사업을 내걸면서 변변한 게놈연구자 하나 끼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늬만 바이오벤처’인 전형적 사례다. 산자부가 추진하는 300억-400억원 규모의 생물산업전용펀드, 기업의 생물벤처투자조합 ‘SK-무한라이프사이언스’ 등 바이오벤처에 투자하겠다는 돈이 넘쳐나고, 바이오주(株)가 뜨며, 바이오밸리도 속속 들어설 계획이다. 그러나 “생물산업이면 무조건 투자하는 식의 지나친 붐이 걱정스럽다”는 연구자의 말처럼 최근의 붐은 허울뿐인 면이 없지않다.바이오의 기반은 게놈 연구다 미국 바이오 붐의 핵심은 게놈(Genome·유전체)연구다. 인간게놈연구는 인간 DNA를 구성하는 30억개 염기서열을 모두 밝혀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게놈과 관련된 본격적 바이오벤처는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고전적 생물산업이랄 수 있는 사료 효소 시약 등에 머물러 있다. 인식조차 불분명하다. 산자부 관계자는 전용펀드와 관련, “게놈분야를 특별히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정도다.
나스닥의 붐은 의약산업, 나아가 생물학 자체의 변화를 반영한다. 인간게놈 프로젝트에 의해 천문학적인 유전자 서열정보가 생산되고 의약분야에 적용하려는 연구가 급진전함에 따라 다양한 관련벤처기업의 잠재적 가능성이 높이 평가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병에 어떤 약초가 효험이 있으므로 그 성분을 추출, 약품을 만드는 게 전통적 접근이었다면 새로운 접근법은 게놈분석에 의해 어떤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와 단백질(흔히 타깃으로 부름)을 찾아내고 그 단백질에 작용하는 성분을 설계하는 것이다. 인류가 개발한 모든 약은 약 500개의 타깃에 어떻게 작용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만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타깃 자체가 1만개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게놈연구가 없다 ‘게놈연구가 없는 바이오벤처’라는 국내 실상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국내 바이오산업은 미국 기술의 60% 수준인데 그 중에서도 게놈프로젝트 기여도는 1%가 채 안된다.
또 게놈연구성과를 산업화할 주체인 제약회사가 영세하다. 미국에서 가장 주가가 뜨고 있는 셀레라 지노믹스, 인사이트제약 등은 유전자서열을 분석, 정보를 생산 가공 판매한다. 밀레니엄제약사는 이를 이용, 타깃을 찾고 이에 작용하는 약물물질을 특허화한다. 이들 주변에 각종 기기·시약·소프트웨어 개발 벤처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벤처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대형 제약회사가 매출의 10%정도를 신약개발에 쏟아붓기 때문이다. 임상실험부턴 1,000억원 이상의 목돈이 들어가 제약회사가 맡는다. 임상에서 90%가 실패하지만 1번만 성공해도 9번의 실패를 보상하고 남을 수익이 돌아온다.
바이오벤처 육성전략 다르다 이러한 바이오산업은 정보통신과 달리 초기투자가 많이 들고 회수는 오래 걸린다. 국내 정보통신 벤처는 5억원으로도 출발하는데 바이오산업에선 기기 1대 값에 불과하다. 다른 생물산업이라면 몰라도 게놈 관련 벤처는 1억원을 투자해 3년내 회수하겠다는 생각은 어림없다.
연구기술이 곧 상품이 되는 만큼 시장성의 핵심은 기술력이다. 국내 벤처인 바이오니아는 밀레니엄같은 기업을 목표로 삼고 DNA 서열 자동분석기와 정제기술, 시약, 프로그램 등을 모두 국산화하는 중인데 개발에 8년이 걸렸다. 이 밖에 DNA칩이나 단백질칩 제작기기, 시약, 유전정보처리 프로그램, 화합물 고속검색기술 등이 바이오벤처가 맡을 만한 기술들이다.
결국 국내에서 바이오벤처가 활성화하려면 막대한 DNA정보를 서열분석하고 가공하는 본류(本流) 즉 게놈연구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게놈프로젝트는 DNA서열을 밝혔을 뿐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 산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이제 시작이다. 지금 붐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몇년이 지나도 생물산업수준은 마찬가지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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