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의 일이다. 홈런타자 장종훈(32,한화)이 청주 세광고를 졸업할 즈음이었다.까까머리의 장종훈은 당초 모대학 진학이 예정되어 있었다. 평범한 선수였던 장종훈은 속칭 잘하는 동료에게 묻어가는 신세였다. 당시 모대학은 장종훈의 야구특기생 입학조건으로 300만원의 기부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장종훈의 부친은 돈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그러는 사이 다른 학부모가 선수를 치는 바람에 대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오갈데 없던 장종훈이 갈데는 오직 한 군데. 프로였다. 장종훈은 당시 막 창단된 빙그레를 찾았다. 연습생으로라도 들어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첫 날 창원전훈장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이튿날 당시 배성서감독에게 애걸복걸 하다시피해서 간신히 연습생으로 프로와 인연을 맺었다.
2군에서 눈물젖은 빵을 먹으며 1년을 보낸 장종훈은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86시즌이 끝난후 빙그레는 대대적인 선수정리에 나섰다. 장종훈도 정리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일설에는 연습생주제에 계약금 600만원에 연봉 600만원을 요구했다가 괘씸죄에 걸렸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장종훈 어머니와 같은 동네 살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재환코치의 읍소로 간신히 살생부리스트에서 빠졌다.
빙그레는 연봉을 600만원으로 올려줄 수 있지만 계약금은 87시즌 성적을 보고 생각해보겠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런 장종훈이 이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홈런타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선수회다 SK창단이다 해서 시끄러웠던 스토브리그를 접고 이번 주말부터 제주에서 열리는 시범경기를 시작으로 올시즌 프로야구가 문을 연다. 갈등의 골이 깊어 올시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팬들은 프로야구개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어찌보면 장종훈은 요즘 화두인 벤처정신을 상당히 앞서 실현한 인물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시즌에 돌입하는 프로야구에 제2,3의 장종훈이 나타난다면 야구팬들이 그라운드를 더 많이 찾을 것이다.
정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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