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이 열린 후 첫번째 월드컵이 동양인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공동개최된다. 이 지구촌 축제의 공통주제로 ‘상생(相生)’을 제안하고 싶다.상생은 동양의 자연철학에 바탕을 둔 우리의 전통사상이다. 경쟁 정복 지배를 바탕으로 한 서양의 물질문명은 현대사회를 이끌어 오면서 인간소외와 환경파괴를 낳았다. 이를 치유할 우리의 큰 뜻이 상생이다.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구 위에 사는 온갖 생명체들이 다 함게 어울려 조화롭고 평등하게 살자는 것이다.
1985년 가을 독일 베를린에서 갓 유학생활을 시작한 우리 부부를 집세도 안받고 함께 살게 해준 레르만 바그너 할아버지를 회상해 본다. 베를린 필하모니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는 85세의 고령인데도 아침마다 냉수마찰을 했다. 명상과 기공체조로 오전을 보냈으며 식사도 채식만 했다. 그는 가끔 우리를 초대해 동양철학 서적으로 가득한 그의 서재에서 현대과학의 문제점들을 얘기하곤 했다. “서양의 과학기술이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으며 이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동양의 자연철학”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 동양인으로서의 자각을 주었고 전공을 식품공학에서 환경공학으로 돌리는 계기가 됐다.
서양문명의 최극단인 신자유주의는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번처 인터넷 주식열풍으로 상징되는 빈부심화의 시대를 가져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물질문명의 이기성과 근시안적 판단으로 인해 지구는 기후변화와 환경호르몬 등의 환경재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제 새천년을 맞으면서 서구 물질문명의 무분별한 확산으로 조화와 균형을 상실한 지구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직관과 존재를 중시하는 정신문화, 즉 동양의 자연철학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자연계에 자행한 만행에 대해 용서를 빌어 화해를 청하고 세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을 존중하는 공동체적 삶을 회복시켜야 한다.
월드컵의 문화주체로서 조정 화해 일치 조화의 의미를 갖는 우리 고유의 우주생명 개념인 상생은 지난친 이기주의로 황폐화한 우리의 인성과 환경재난에 처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새 지평을 열어줄 키워드이다.
이기영
호서대 자연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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