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둘에 스키를 시작했고, 예순 넷에 킬리만자로를 올랐고, 그리고 일흔에 후지산꼭대기를 밟았다. 지금도 그는 고향 플레인즈의 교회 잔디밭을 깎는 일을 맡아 한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은퇴(隱退)특집을 내면서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의 생활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Never been better)는 제목을 붙여 커버스토리로 실었다. 언론인 바바라 월터스가 『인생에서 최고의 해는 언제였나요』라고 물었다. 일흔 다섯인 카터는 대답했다. 『지금이요』■미국에서 대통령직을 가장 즐긴 사람은 카터를 강제 은퇴시킨 레이건이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전직 대통령으론 카터가 꼽힌다. 쉰 여섯에 백악관에서 쫓겨난 그는 낙향하여 젊은 날 땅콩농장 주인일 때 지은 집에서 검소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퇴임후 20년은 은퇴라고 보기엔 너무나 활동적이다. 때로는 평화의 특사로 분쟁지역에 서 있는가하면, 「인류애를 위한 주거프로젝트」의 일원으로 후진국 시골에서 목수노릇을 한다. 또한 고향에서는 정치학과 사회복지까지 강의하는 대학강사가 된다. 무엇을 하든지 봉사정신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카터와 비슷한 점이 있다. 나이가 같다. 조깅과 등산을 좋아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낙천적인 미소가 매력적이다. 외환위기를 대비하지 못한 실정이 국민들의 가슴에 큰 못을 박았지만, 초기에는 힘을 갖고 개혁을 단행하여 갈채를 받기도 했다. 카터보다도 약간 더 권좌를 누렸고, 권력을 놓을 때 카터보다는 덜 초라했다. 그런데 왜 김 전대통령은 퇴임한지 2년이 지난 지금 정치권의 관심 대상이 되려고 하는 것일까.
■김 전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적지 않다. 그러나 그의 입김이 작용할수록 우리 정치는 후퇴하게 되고, 그의 꼴이 우습게 될 것이다. 시대적 흐름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카터의 활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름답고 유익한 전직대통령의 활동이 김 전대통령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황홀한 은퇴」는 본인의 즐거움이자 역사에의 봉사이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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