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불안 요인을 지닌 우리 경제는 지금 총선이라는 정치적 악재가 겹치면서 IMF이후의 난국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말할 나위 없고 정책당국과 주요 경제주체들은 벤처열기와 경기회복이라는 표피적 달콤함에 도취되어 거시적 판단력이 둔감해진 듯하다.선거가 경제를 교란시키는 한국적 악폐를 우리는 익히 체험해 왔다. 이를 계량적으로 실증하는 분석이 엊그제 국내 민간연구소에서 나오기도 했다. 80년이후 한·미·일 3국의 총선 및 대선을 비교한 결과, 한국이 단연 선거의 충격을 많이 받아 선거 때마다 물가 생산 수출등 경제지표들이 크게 악화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공식」은 요즘 선거판이나 중앙부처 및 지자체들의 분위기를 볼 때 올해도 어김없이 들어맞을 것이 불 보듯 자명하다.
정책당국들은 이미 경쟁적으로 선거용 선심 의혹이 짙은 인기성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경제목표와 상충되는 각종 조세감면과 재정투입 조치들이 대책없이 남발되고 있으나, 빈부격차 해소라는 명분에 눌려 올바른 비판의 목소리는 가려지고 있다.
이를 응당 감시하고 제동해야 할 정치권은 그들대로 선거지상주의에 빠져 국가경제는 이미 안중에 없다.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시중의 통화팽창과 인플레 압력에 정치권은 사상 최대규모의 총선 돈 풀기로 불에 기름을 붓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경제가 정상 궤도위에 있다면 이런 것들은 타파해야 할 관행이기는 하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비용이라는 필요악 따위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역대 선거 때와 사뭇 다르다. 올해는 IMF관리체제에서 명실상부한 졸업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차대한 시기다. 거시경제의 안정을 조금이라도 저해할 변수들을 이중삼중으로 걸러내면서 금융권 공공부문 등의 구조조정과 개혁을 차질없이 완수해야만 이것이 가능하다.
우리경제는 최근 무역수지 환율 유가 등 대내외 환경들이 흔들리고 있다. 살얼음판을 걷듯이 위태위태한 양상이다. 그럴수록 정책 당국자들은 원칙과 방향에 충실해야 하는데도 총선만 넘기고 보자는 임기응변식 땜질 처방과 보신에 급급한 무책임한 모습들이다.
요즘의 과열소비 행태와 증시 투기장화 등이 보여주고 있는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해이와 거품 징후가, 흥청망청하는 빗나간 총선 분위기와 맞물려 폭발하기라도 한다면, 지난 2년여간 중산층의 고통을 담보로 쌓아온 경제재건 노력은 한 순간에 무화(無化)하는 사태를 맞이할 것이다. 정부 당국자들의 소신과 사명감이 요구되는 위기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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