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그림에서 어엿한 주인공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갤러리 우덕(2월 28일-3월 3일)에서 열리고 있는 「이김천」전과 성곡미술관에서 4-29일 열릴 「내일의 작가 2000-조은영」전에서 견공들은 그야말로 「상팔자」의 폼을 잡고 화폭을 지배하고 있다.이김천씨는 『나의 그림에서 견공들이 엑스트라 자리에서 주인공으로 들어앉은 것은 얼마전부터』라면서 『몇년 전만 해도 개는 그저 한쪽 다리를 들고 방뇨나 하는 나의 그림의 엑스트라였으나, 문득 넉살스럽게 드러누운 모습을 보면서 그들로부터 삶의 의미 같은 것을 느끼게 돼 주인공으로 앉혔다』고 말했다.
「개는 개다」 「개 갈 길을 간다」 「개로움」 「개랑 논다」 「개랑 노는데 비온다」 등 이김천의 작품 속에 드러누운 개들은 여유만만하기 그지 없다. 인생의 고민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흐드러지게 핀 꽃밭 속에서 속삭이고 있는 개의 모습에서는 은은한 향기마저 감돈다. 하지만 눈빛은 매섭기 짝이 없다. 날카로운 흰 이빨과 함께 반짝이는 눈은 개 인생도 「만수산 드렁칡」처럼 세월 모르고 살아가는 생은 아님을 알려준다. 미술평론가 최금수(서남미술관 큐레이터)씨는 『견공이 말하려는 것은 세상 한켠에 뒤쳐져 그저 되는대로 살라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하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작가의 메시지를 풀이했다.
이에 비해 조은영의 개는 엄밀히 말하면 강아지다. 성곡미술관이 참신한 젊은 작가 발굴을 목표로 기획 운영하고 있는 「내일의 작가」 시리즈의 올해 두번째 작가로 선정된 조은영씨의 이번 전시회는 10여년의 미국과 런던 유학을 마치고 갖는 첫 귀국전이다. 조은영씨는 『3~4년 동안 주로 강아지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렸다』면서 『강아지를 택한 이유는 지구상 어디를 가도 강아지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사람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주로 강아지의 뒷 모습을 그린다. 박스 속에 놓인 몽실몽실한 털복숭이 강아지의 뒷모습은 왠지 측은하고 쓸쓸해 보인다. 작가는 『유학시절 외로움을 겪던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면서 『귀국 후엔 동그란 합판 작업을 통해 한 쌍의 강아지가 정답게 놀고 있는 따뜻한 그림들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정서와는 좀 다른, 색다른 감수성의 강아지들이다. /송영주기자
「개 갈 길을 간다」. 이김천 작.
「Full Expectation」. 조은영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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