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환경운동은 먹고 살기도 힘든 시대에 배부른 사람들이 하는 「한가한 소리」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채 한세대가 지나지 않아 환경운동은 인류가 다음 삶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 되고 있다. 자연 파괴가 그만큼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1월 사회 각 분야 60여명의 전문가들로 「21세기 위원회」를 구성했다. 환경운동의 실천전략을 포함한 중장기적 비전과 21세기 사회상의 구체적 모델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그 성과물의 하나인 「20세기 딛고 뛰어넘기」가 출간됐다. 「시민판 21세기 구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610쪽의 방대한 분량을 통해 인간의 생의 바탕으로서의 환경운동의 당위성과 함께 상충하는 발전과 보호의 논리,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 등 사회 각분야의 새로운 지향을 담아내고 있다. 인간의 상상력과 생명조차 매매하게 될 21세기, 시장의 위력이 더욱 커지는 시대에 환경과 인간 중심의 가치 체계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임길진(KDI국제대학원 원장)씨는 「21세기 환경유토피아를 위하여」에서 먼저 「가치 혁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역사적 혼란기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으로 그는 「적응적 보수주의」를 꼽았다. 현 체제를 유지하는 철학이나 행동 방법을 바꾸지 않은 채 국부적 변화만으로 권력 구조와 이해관계를 지속시키려는 현상이다. 삶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환경을 인식하고 보호하는 새로운 가치체계를 수립하지 않는 이상 「환경 유토피아」는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생태위기가 20세기 근대성의 산물이었다면 탈근대사회의 사상적 기초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평화적 상생(相生)의 원리이다.
모태로서의 여성에 더욱 주목하는 「생태 여성론」, 삶을 만끽하면서도 타자및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삶을 재조직하기 위한 「문화생태학」등 21세기 새로운 담론으로 주목할 만하다. 물론 이런 담론이 형성되기 위해선 국지적 지역적 규모의 경제가 자율권을 확보하는 경제전략, 시민이 주체가 되는 참여민주주의 등이 토대를 이뤄야 함은 당연하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