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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금융빅뱅 시작됐다] "안바꾸면 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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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금융빅뱅 시작됐다] "안바꾸면 먹힌다"

입력
2000.0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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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늦었어. 다들 모여봐』 퇴근시간이 지난 오후8시 조흥은행 본점 별관 11층 e-금융부 사무실. 모 시중은행에서 인터넷뱅킹 관련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신문기사 탓에 「비상소집」이 걸렸다. 별로 새삼스런 일도 아니지만 이영재(李泳栽)부장을 비롯한 23명 직원의 얼굴엔 긴박감이 가득하다. 『인터넷뱅킹은 속도싸움입니다. 시장 초기단계의 10-20분 차이가 은행의 생사를 좌우할 겁니다』 1시간 가량의 부서회의를 마친 이 부장은 정보수집을 위해 강남 테헤란밸리로 발걸음을 재촉한다.『뱅크(실물 금융기관)는 사라져도 뱅킹(금융업무)은 영원할 것이다』 한 은행장이 지적하는 금융구조조정의 요체다. 규모 확충을 통해 고객을 흡수하는 기존의 영업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점포 창구에서 수행하는 모든 일들이 고스란히 사이버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으로는 사이버공간에서만 처리가 가능한 새로운 영역의 금융업무가 창출될 것으로도 예상된다. 신한은행 사이버뱅킹팀 정충용(鄭忠溶)팀장은 『고객의 특성을 분류해 1대1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인터넷뱅킹의 발전 방향은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디지털금융의 발전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올 1월중 사이버주식거래 규모는 전체거래의 44.6%인 102조원으로 이미 미국의 30%를 훨씬 넘어섰다. 은행권의 인터넷뱅킹은 아직 초기단계라는 지적에도 불구, 신한은행의 경우 인터넷 신용대출을 시작한 지 7개월만에 인터넷 신용대출 신청건수가 창구 접수건수를 앞질렀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급성장한 순수 인터넷은행도 국내에 조만간 등장할 것으로 예상돼 경쟁은 더욱 부추겨질 전망이다.

외국 금융기관의 급속한 국내 진출은 정부의 보호막을 들어냈다. 정부가 국내 금융기관에만 「도덕적 의무」를 강요한다해도 생사(生死)가 달린 만큼 예전처럼 더 이상 순응할 금융기관은 없다. 연공서열 파괴와 연봉제 및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도입으로 내부경쟁을 부추기고 있고 무분별한 여신제도는 개인신용평점제(CSS) 등 최첨단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대체했다. 금융연구원 고성수(高晟洙)연구위원은 『「신용」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 인식 탓』이라고 진단한다. 『한때 직속 부하직원이 본점 핵심부서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언제부터인가 하달문서가 전자메일로 내려오면서 여직원에게 부탁해 인쇄문서를 받아보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한 시중은행 L부장의 토로는 적자생존의 환경에 내몰리는 금융권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다.

하지만 『껍데기는 바뀌었지만 알맹이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기관들이 부실 채권을 처분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데만 열중했을 뿐 내부적인 체질 개선은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다. 고려대 장하성(張夏成)교수는 『인적 청산이 이뤄지지 않고 자산건전성을 구축할 만한 능력이 갖춰지지 않는 한 아직 금융개혁은 멀었다』고 경고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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