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네번째 중단편집 '딸기밭'소설가 신경숙(37)씨가 변했다. 4년만에 묶인 그의 네번째 중·단편집 「딸기밭」(문학과지성사 발행)은 그의 소설세계에서 주목할만한 변모를 보여준다. 올해로 그는 등단한 지 만 15년이 된다. 『체질 탓이겠지만 내겐 작품을 쓰고 나면 그 작품과 헤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소설을 쓰고 헤어지고 또 쓰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는 동안 덧없이 청춘이 가버렸다』
15년간 숙성되고 벼려진 그의 세계는 어떤 것이었던가. 그것은 방과 집, 또는 슬픔 같은 단어들로 상징되는 것이었다. 「외딴 방」과 「오래 전 집을 떠날 때」 같은 소설 제목처럼, 글을 쓰는 일로써 젊음의 채울 수 없는 갈증과 허기를 달래던 시절, 혹은 떠나와 이제는 황폐해진 집과 고향의 자연을 회억(回憶)하는 것이 그의 글세계였다. 「그래서 그의 소설들은 지나간 것들에 대한 회상이고 추념이며, 자잘하고 정겨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고, 그 문체는 내성적이고 에세이풍이어서, 서사적이기보다 정감적인 것이었고, 재현적이기보자 자전적이었다」(평론가 김병익). 그리고 그 소설의 주조는 역시 그의 장편 제목처럼 「깊은 슬픔」이었다.
그러나 외딴 방과 집에서 그는 이제 딸기밭으로 나왔다. 딸기밭은 열려있는 장소다. 일본작가 무라카미 류는 지구상의 모든 음식을 관능으로 재해석했지만, 신씨에게는 오월의 우리 땅에서 익어가는 딸기야말로 그만의 관능의 상징이 된다. 중편 「딸기밭」에서 신씨의 새로운 소설문법이 익어간다.
「지금 나는 내 삶을 잊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서른 일곱 살 먹은 여자가 있다. 그녀가 12년 전에 헤어진 한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정태춘·박은옥의 공연장에서 그녀를 보고 걸어온 전화다. 그녀가 회상하는 12-14년 전의 이야기가 「딸기밭」의 줄거리다.
최루탄 가스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숨막히게 했던 대학교정에서 그녀는 그를 만났다. 그녀는 신입생이었고 그는 당시 대학가를 돌며 검은 장정을 한 어떤 계간지의 영인본을 팔던 남자였다. 흰 고무신을 신은 범죄형 얼굴의 그 남자에게서 그녀는 흰 고무신을 신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먼저 그에게 다가간 그녀는 「죽어도 좋다」는 격렬한 욕망으로 먼저 그에게 몸을 연다. 또 다른 「유」라는 그녀의 동급생이 있다. 유는 그녀가 보기에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다. 육체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비애, 고통, 결핍, 불가능이라고는 없어보이는, 온전한 자유를 가진 존재다. 어느날 그의 만나자는 약속을 물리치고 그녀는 까닭모르게 유의 집으로 가서 그녀와 딸기밭으로 향한다. 딸기밭에서 그녀는 유의 드러난 허벅지를 보고 살의(殺意)와 욕망을 함께 느낀다. 손으로 목을 조르다가 그의 「벌어진 입속에 혀를 집어넣는다」.
결코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과감한 표현법과 근친애와 동성애까지 다루며 신씨는 「딸기밭」에서 방과 집이 아닌, 타자와 욕망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세계의 끝에 다다른 주인공의 인식은 이렇다. 『딸기밭에서 돌아온 후 나는 금지된 것들 근처에는 가지 않는다. 생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인다. 내가 분석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가 누군가의 인생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그것이 인간을 변화시키리라는 것도』. 이같이 여전한 비의(秘意)적 문장으로, 넓고 다른 세계로 나선 신씨의 소설이 앞으로는 「생의 불가능성」을 어떻게 헤치고 나가 보여줄까. 작품집 「딸기밭」은 이런 기대를 하게 만든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상황에서나 작가로서 내가 글쓰기를 통해 얻어내고 싶은 것은 자유』였으며 그 글이 『존재의 텅 빈 심연 한켠을 채워준다면 그 이상 보람이 없다』는 신경숙씨./원유헌기자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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