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가 25일 아침 상도동을 전격 방문했다. 2·18 공천을 3김식 정치청산을 위한 개혁공천이라고 말해온 그로서는 정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불과 2년여 전 적색등이 켜진 대선을 위해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김심(金心)」을 잡아야 한다던 측근들의 집요한 요청에도 『나는 못한다』며 뿌리치던 그였다.이총재가 자존심을 접고 상도동을 찾은 이유는 달리 공천 후유증을 추스릴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천이 사천(私薦)시비에 휘말리고 영남권은 신당바람에 비틀거리는 전혀 뜻밖에 상황이 전개된데다 당 내부에서조차 「총재 인책론」이 나오는 등 명분에 연연해 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총재는 상도동 방문 후 『김전대통령에게 「개혁 공천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미숙한 일처리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 앞에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정국이 다당으로 쪼개지는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심경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석자 없이 조찬을 겸해 40분간 이뤄진 회동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둘만의 얘기』라며 말문을 닫았다. 이에 대해 YS의 대변인역인 박종웅(朴鍾雄)의원은 『이총재가 한나라당 공천에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얘기했고 김전대통령은 듣기만 했다』고 전했다.
이총재측은 그러나 『김전대통령이 대문 앞까지 나와 밝은 표정으로 배웅했다』며 『두사람은 이번 총선이 DJ정권을 심판하는 계기가 돼야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본 만큼 김심을 앞세운 신당 파동도 잦아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주류측은 상도동 방문으로 체면은 상했지만 기자회견과 더불어 공천후유증을 수습할 돌파구는 마련했다며 안도감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총재는 상도동행을 결심하고도 언론은 물론 맹형규(孟亨奎)비서실장 등 최측근에게조차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언론에 현장이 공개될 경우 상도동에 매달려온 신당파와 한묶음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총재의 상도동 방문은 서청원(徐淸源)의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23일 상도동을 찾아 『이총재가 오면 만나겠다』는 대답을 받아낸 서의원은 이틀동안 6차례나 이총재와 접촉, 『고집만 피우다가는 수도권 선거까지 망친다』며 상도동행을 권유했다. 결국 이총재는 당3역 인책안은 유보하는 대신 상도동을 방문키로 결심, 24일 밤 늦게 서의원에게 상도동에 연락해주도록 부탁했다. 이총재는 이에 앞서 24일 저녁 홍사덕(洪思德)선대위원장 박관용(朴寬用)·최병렬(崔秉烈)부총재 등 가까운 당 중진들과 가진 대책회의에서도 상도동 방문 문제에 대해 확답을 하지 않았다.
이동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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