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말을 흥분시켜야 다. 그러나 거기까지만…」경마 관계자들 사이에서 가끔 농담에 섞어 쓰는 말 가운데 「시정마」에 얽힌 얘기가 많다. 이름 그대로 시정마(始精馬)는 종자말이 암말과 교배를 하기전에 암말을 처음에 흥분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오로지 그 역할만 맡고 실제 교배는 다른 말이 대신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시정마의 책임은 중요하다. 암말이 수말과 교배하기 전에 수태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보통 수말은 품종과 체력이 좋은 종자말이 동원되는데 비싼 종자말과의 교배가 물거품이 되도록 할 수는 없다는 마주들의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나 시정마는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껏 분위기가 고조되는 결정적인 순간에 암말을 양보해야만 다. 암말과 교배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옆에서 지켜보던 관리사들이 재빠르게 다른 수말을 투입 다. 이때 시정마를 암말로부터 떼어놓는 작업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마사회 박승완씨는 『시정마가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고까지 얘기 다. 실제 말이 눈물을 흘리는지 아닌지 확인하긴 어렵지만 시정마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 시각이다.
수말과 암말간 교배에는 사람과 다른 특별 규칙이 따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교배 때 반드시 사람이 입회해야 다는 것이다. 어느 암말이 어느 수말에게서 씨앗을 받아 후손을 낳았는지 족보를 확인해야 할 필요에서다.
특히 유명 수말과의 교배 때는 더 더욱 확인이 필요하다. 교배후에는 교배증명서가 발급된다. 말들간 관계에는 반드시 이 증명서가 따른다. 사람끼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말에게는 꼭 필요한 절차다.
박원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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