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만남] 전통산업 대표 VS 벤처 선구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만남] 전통산업 대표 VS 벤처 선구자

입력
2000.02.26 00:00
0 0

김윤규 현대건설사장 VS 이민화 (주)메디슨회장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벤처 열기가 지속되면서 인력과 자금이 벤처산업쪽으로 쏠리고 있다. 대졸 우수인력이 벤처기업으로 몰리는가 하면 증시도 거래소는 무너지고 코스닥은 활기다. 이러다간 전통산업-Smokestake Industries-이 죽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자원부족인 우리 여건상 벤처투자나 벤처산업 육성을 통한 신기술 개발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런 양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통산업도 발전시키고 벤처정신 혹은 벤처기술도 발전시키는 방안을 모색이 시급한 과제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산업을 대표하는 현대그룹의 간판경영인 김윤규(金潤圭) 현대건설사장과 국내 벤처산업의 선구자로 벤처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민화(李珉和) ㈜메디슨회장이 만나 전통산업에 벤처라는 날개를 어떻게 달 것이냐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지금의 벤처열기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진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민화=벤처열기가 거품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벤처열기에 대한 비판이 지나쳐 「반(反)벤처정서」같은 것이 형성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이 「사촌이 논을 사서 배가 아픈 사람들의 정서」와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이 세상에 벤처기업 아닌 기업은 없습니다. 도전정신이 없으면 창업을 할 수 없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도전이 가능하도록 지식집약적인 기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김윤규=맞습니다. 기간산업과 대형 제조업체도 처음 시작은 벤처였습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조선사업을 시작할 때 흑백사진 한 장만 들고 영국에 가서 자본을 유치했습니다. 분명 미래를 위해 벤처기업은 장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벤처업종으로 자금이 몰리는 등 주식시장의 투기화로 전통제조업체가 자본조달에 고생하고 있는 현실의 부작용도 함께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방금 지적대로 주식시장 왜곡과 인적 자원 편중으로 「벤처가 제조업의 위기를 가져왔다」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민화=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벤처기업의 70%가 제조업체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회장으로 있는 벤처협회 회원사 5,400곳 가운데 4,000곳이 제조업체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지식경쟁력과 도전정신을 갖추면 벤처업체도 순식간에 대형 제조업체가 될 수 있습니다. 제조업의 위기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벤처와 전통 산업을 어떻게 결합하고 접목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할 시기입니다.

김윤규=그 지적에는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기존 제조업체도 벤처기업의 노하우를 적극 도입해야 합니다. 현대도 인터넷팀을 구성하고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목동에 건물 하나를 확보해 벤처창업 희망자들에게 마음껏 쓰게 했더니 벌써 좋은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주식시장을 보면 매출액이 몇 백억원에 불과한 벤처기업 몇 개가 마음을 합치면 몇조원 규모의 대기업을 살 수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래의 산업에 자원이 몰리는 것은 큰 흐름이지만 수출을 담당하는 기업 가운데 자금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지요.

이민화=시장에 의한 시장의 왜곡은 시장에서 풀어야 합니다. 자본과 인력의 불균형 분배도 시장이 해결해야지 정책으로 풀어서는 안되지요. 지금 당장 시장 왜곡을 바로 잡자는 것은 시장에 개입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이 들리는 게 사실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전세계적인 현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벌써 10년 전에 지식집약적 기업과 기존 전통 제조업체의 시가총액 역전현상이 일어났어요.

김윤규=기존 기업들도 변신을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경쟁력있는 벤처기업으로부터 많은 점을 배우고, 사업도 접목하면 빠져 나갔던 인력도 되돌아오고 직원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도 제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얼마 전 정부에 벤처기업에 대한 명확한 옥석구분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전통산업과 벤처가 공생하는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코스닥시장에서도 느낄 수 있듯 벤처하면 인터넷 업체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비제조·내수업종이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 같습니다.

김윤규=인터넷기업의 성장력은 인정해야 하지만 코스닥시장을 살펴볼 때 투기적인 성향이 쉽게 보여집니다. 독자적 기술로 경쟁력있는 상품을 개발한 벤처기업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래를 책임진 젊은 층 사이에 인터넷기업이 단순히 돈버는 수단으로만 이해된다면 기간 제조업체가 이룬 성과가 가려지고, 인적 자원의 불균형 분배가 심화하겠지요.

이민화=몇몇 인터넷 서비스업체에 대한 거품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벤처기업에 대한 우려와 비판도 대부분 이 논쟁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인터넷 서비스업 자체에 대한 비판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많아요. 상품가격의 대략 절반은 유통비인데, 이 유통비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해결책은 계획경제, 즉 공산주의로 가는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유통이 부(富)를 만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터넷 서비스업은 이 유통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50%의 혁명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또 기업 내부의 제조과정에서도 원재료 이외의 분야에서 비용도 절감할 수 있어 이중의 효과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인터넷이 부를 만든다고도 볼 수 있지요.

-벤처기업과 전통 제조업이 협력해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민화=우선 우리나라가 미국 다음가는 벤처강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식전쟁에서 대단한 경쟁력을 갖고 있어요. 우리 벤처의 R&D(연구·개발)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오스트리아와 일본의 기업을 인수해 보니 우리 기업보다 R&D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을 전제로 나는 21세기의 패러다임 속에서 국가경쟁력을 키우려면 중소기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남는 중소기업이 전체의 절반 이상이 될까요? 우리 중소기업이 이러한 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자체적으로 R&D를 하는 것인데 비현실적 방법이겠지요. 두번째로 대학이나 연구소의 기술을 이전받는 것인데 완성된 기술이 아니어서 역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주장하는 방법인데 중소기업과 대학 등의 실험실 기술을 융합하는 것입니다. 산업자원부와 벤처협회가 기술거래소를 만든 것도 이런 취지입니다. 다음에, 대기업과 벤처기업은 당연히 보완관계입니다. 다루는 품목이 다른데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협력해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R&D능력이 뛰어난 벤처와 마케팅, 즉 상품의 기획·판매 능력이 뛰어난 대기업이 결합한다면 지식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대기업도 벤처기업을 M&A해야 합니다. 기업을 팔아먹었다, 문어발이다 라고 욕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업을 사고 파는 것은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게 됩니다.

김윤규=미국이 최근 몇년간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벤처기업과 기존 기업의 접목을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한 경영자가 앞장서서 이 일을 해야 합니다. 현대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이미 벤처기업의 특성을 조직 속으로 흡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으로 기업을 도식적으로 나누는 분류는 21세기에 어울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 대기업 가운데 전세계적인 관점으로 봤을때 대기업이 될 만한 곳이 몇 개나 될까요. 독특한 사업으로 세계경쟁력을 지니면 그것만으로 평가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굳이 분류하자면 모두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해야겠지요. 대기업이 지식집약적인 사업을 접목시켰을 때 그 쪽 이익이 기존 사업보다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대기업들도 발상의 전환을 해야겠지요. 현대도 인터넷 사업을 하는데 새로운 것을 찾아보라고 하면 직원들이 무조건 직접 개발하려고 합니다. 밖에서 사올 수 있는 기술은 사오는 것이 더 효율적인데도 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벤처의 옥석을 가려주는 평가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화를 얼마나 벌어들이는지, 즉 국제경쟁력은 얼마나 되는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경제는 근본적으로 수출의존형인데 과연 벤처가 자동차 반도체 중공업등 우리 수출산업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코스닥이 호황이라지만 올들어 무역수지는 적자로 반전, 국가경제를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이민화=저도 지금 당장 벤처가 한국경제의 구세주가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벤처기업 전체가 총 GNP의 5%수준밖에 안되니까요. 하지만 5년후인 2005년에는 25% 수준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벤처기업의 수출액은 95년에 비해 5배 증가했으니 가능한 일이지요.

김윤규=무역적자에 대한 우려가 높습니다. 저도 아직 벤처기업이 이러한 적자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아직은 대기업이 노력해야겠지요. 하지만 경쟁력있는 미래 산업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끝으로 이회장과 제가 만나는 오늘같은 자리가 자주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민화=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유익한 자리였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사기꾼이 없으면 시장경제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묻지마 투자하는 사람은 손해를 봐야 다음부터는 건전한 평가에 의해 투자를 합니다. 고추값이 폭락해야 다음해 고추 생산이 줄어듭니다. 벤처에 대해 지나친 우려와 불신을 갖지 말고 시장의 기능을 믿었으면 합니다.

진행=정숭호 편집국부국장

정리=이상연기자

■ 김윤규사장(56)은 1969년 서울공대 졸업후 곧바로 현대건설에 입사, 1998년 사장에 취임했다. 지난해부터는 현대그룹의 남북경협사업 창구인 현대아산사장도 겸임, 추진력있는 전문경영인으로 일반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능률협회부회장, CALS협회회장 등을 맡아 우리 산업전반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이민화회장(47)은 1976년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기및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중 대표적 벤처기업이 된 메디슨을 창업하고 85년에는 사장, 98년에는 회장으로 취임했다. 벤처기업 단체인 벤처기업협회 창립을 주도했고 95년 12월 협회 창립이후 현재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