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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10년 돌아온 길이 다시 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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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10년 돌아온 길이 다시 그길

입력
2000.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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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 서울 여의도에서 젊은 혈기로 시작한 학원사업. 지금도 그렇지만 1980년대 후반의 여의도에는 유동인구와 아파트가 많았다. 직장인과 주민 모두 영어회화에 관심이 많았고 수강생 모집도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당장 나섰다. 신문에 전단을 넣어 뿌리고 기업체와 방송국 앞에서 광고를 했다. 전단은 최고급 종이로 만들었고 강의실은 비싼 원탁 테이블로 장식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개강은 했지만 등록한 수강생은 서너명.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다음날 바로 임대료와 여직원 봉급을 줘야했다. 외국인 강사들은 언제 강의를 할 수 있냐며 아우성이었다. 어떻게해서든 살아남아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고민고민하다 생각한 게 기업체 위탁교육.

당시는 미국인 강사가 기업체에 파견돼 임직원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일이 많았다. 나는 기업과 은행 등의 관계자를 만나 열심히 교섭했으며 그 결과 상당수 기업체의 위탁교육을 유치할 수 있었다. 기업체위탁교육은 순조로운 항해를 했고 『위탁교육은 당신이 최고』라는 격찬을 들었다. 대학 교수들은 영어회화를 가르칠 수 있게 해달라고까지 했고, 다른 곳에 학원을 차려 동업하자는 제의도 들어왔다.

일이 이렇게 잘되니 미국인 강사가 부족해졌다. 자격있는 강사를 모집하러 이리저리 나섰다. 하지만 법적 신분을 갖춘, 자격있는 강사는 전무했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일반 미국인을 기업체위탁교육 강사로 보냈다. 그러나 몇달후 법무부가 외국인 취업단속지침을 내림에 따라 기업체 위탁교육을 중단시켜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학원간의 경쟁에 불이 붙었다. 늘어나는 건 오직 담배뿐. 며칠 뒤 비싼 원탁테이블과 의자를 삼륜차에 싣고가 청계천 중고가구센터에서 처분한 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여의도를 빠져 나가야만 했다.

1988년1월, 나는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젊은 나이에 값비싼 경험을 했다는 위안과 「다시는 학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교차했다.

그로부터 10년후, 이제 40대 초반에 들어선 나는 뉴욕 맨해튼서 20마일 떨어진 웨체스터에서 또 다른 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니 학원과 나는 뗄레야 뗄수 없는 사이인 것 같다.

/황운영·미국 뉴욕 웨체스터 C.C.B. 진학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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