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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과 호흡하는 패션판매 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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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과 호흡하는 패션판매 첨병

입력
2000.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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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지긋한 중년여성이 옷을 사러 왔다. 뭘 보고 고를까? 알려진 브랜드인가, 배가 나와 보이지 않을까, 동창모임 때 입으면 무슨 말을 들을까….중요한 게 빠졌다. 「매장에 내가 아는 직원이 있나」. 중년 소비자들이 옷을 사는 데에는 판매직원의 권유가 절대적이다. 패션업체의 전략본부가 디자인실이라면 제품을 갖고 소비자와 만나는 첨병은 매장의 총책임자인 숍 마스터(Shop Master·숍 매니저라고도 함)다.

『고객이 산 옷을 제가 더 정확히 기억하죠. 신제품이 나오면 「지난번에 사간 그 옷과 맞춰 입으세요」하고 권해요. 단골고객의 신체 사이즈 변화도 모두 제 머리 속에 들어 있는걸요』

현대백화점 본점의 디자이너 브랜드 「김연주」의 숍 마스터 정병의(45)씨. 16년 전 숍 마스터를 시작해 지금은 연봉 6,000만원을 받는 고소득자다. 그의 연봉은 매출의 일정 비율을 받는, 철저한 성과급제다. 일반적으로 숍 마스터의 고용형태는 매출액의 3~8%를 수수료로 받거나, 본사에 보증금을 내고 지분을 나눠갖는 중간관리제 두가지다. 업체들이 이처럼 성과급을 보장하고 때론 치열한 스카우트전을 벌일 만큼 숍 마스터는 판매력을 좌우한다. 브랜드 이름을 걸고 저마다 다채로운 디자인, 색상을 내놓아도 입는 사람이 느끼는 그 미묘한 부족감은 매장 직원의 설득으로 메워지는 수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업계에선 『연봉이 1억원에 가까운 샵마(숍 마스터를 흔히 부르는 이름)도 있다』 『샴마에겐 본사 직원도 쩔쩔 맨다』는 이야기가 돈다.

그러나 매출을 올린다는 게 그저 말품 좀 팔아 되는 게 아니다. 정씨 말대로 『중년여성이 옷 한벌을 사는 데 드는 시간이 빠르면 30분, 까다로운 편이면 2시간』이다. 때론 『이런 옷은 절대 나한테 안 맞는다』는 소비자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때론 몇 번을 입은 후 반품되는 옷도 웃으며 받아줘야 한다. 요즘 옆 매장이 북적인다 싶으면 괜히 말을 걸면서 요모조모 살핀다. 「첩보전」이다. 매달 전국 곳곳에 있는 매장의 숍 마스터끼리 회의를 열고 요즘 잘 나가는 스타일이 어떤 건지, 사은품은 뭐가 좋은지 등을 상의한다.

출시에 앞서 열리는 본사 품평회 때 가장 목청높이는 이들이 또 숍 마스터다. 『이걸 이렇게 만들면 소비자들 항의가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고 따져물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해외 트렌드에 밀착된 디자인실과 소비자 흐름을 꿰고 있는 숍 마스터는 늘 팽팽한 긴장관계다.

『고객을 우습게 알면 무너지는 건 금방이에요. 제가 판매하는 중년여성을 위한 정장 브랜드인 경우엔 단골고객을 관리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단골을 만들려면 고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기본원칙입니다』 정씨는 때로 소비자가 옷을 사려는 것도 말린다. 『다음에 이런 옷이 나오는데 이것보다 더 잘 어울릴 것같다』고 하면 신뢰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원 출신의 정씨는 원단·재고관리 담당으로 패션업체에 발을 들인 후 숍 마스터를 시작했다. 그는 신상품을 보면 『이 옷은 이 사람에게 어울리겠다』며 흥분하기 시작한다. 정작 옷이 팔리지 않으면 자기가 더 아쉬워 할 정도다. 『많은 사람을 대하는 일이 쉽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들이 조금이라도 변신하도록 하는 데에 기쁨을 느끼죠. 옷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나의 좌우명]

내가 원하는 것은 남도 원한다. 나라면 옷을 반품하려 할 때 얼마나 미안할까, 그렇다면 직원이 어떻게 받아주는 게 좋을까를 늘 생각한다. 수선 맞춤을 할 때 사이즈를 안 재도 한눈에 보이는 수가 있지만 고객이 불안해 할까봐 다시 확인하는 식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신뢰를 준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직업가이드] 숍 마스터

숍 마스터는 판매직원으로 시작해 매장 책임자로 올라가는 게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패션 마케팅을 전공하고 숍 마스터를 지원하는 인력도 생기고 있다. 능력에 따라 고액 소득이 가능한 데다가 디자이너부문은 전공자가 많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패션디자인이나 마케팅 전공자라면 아무래도 수선, 상품관리, 매장운영 등에 유리할 수 있다. 특히 중간관리제로 본사와 계약을 맺고 매장을 운영하는 경우 판매직원을 직접 고용하고 전체 매출에서 월급을 주는 소사장 역할을 해야 하므로 경영감각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서비스직종이므로 대인관계 등 성격이 크게 좌우한다. 정씨는 『패션계 종사자가 대부분 그렇듯 숍 마스터도 변신의 욕구가 없다면 버티기 힘들다』고 조언한다.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고객이 변화하도록 유도하는 데에서 충족감을 느낄 수 없다면 수많은 사람을 대하는 데에 쉽게 지치기 때문이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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