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가족 모두 서울에 두고 수도자 처럼 사는 이왈종 화백의 제주도 삶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17일 오후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서귀포를 향해 차를 달렸다. 차 밖의 바람소리가 귀를 가른다. 서귀포시 동홍동 281_2. 정방폭포 옆 바로 이왈종(55·李曰鍾) 화백의 집이다. 문패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중도관」(中道觀)이라는 당호가 그의 집임을 알게했다.
안채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철제 대문을 열자 눈에 들어오는 붉은 동백. 그림 속에서 늘 황홀한 선홍색으로 보는 이를 흥분시켰던 바로 그 동백꽃이었다.
『동백꽃이 나를 먹여살리고 있어요』 빙그레 웃으며 그는 기자를 맞았다. 올해로 서울생활을 접고 제주에 내려온 지 만 10년. 제주에서 세번째로 옮긴 집이라 했다.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는 남향 집은 이왈종 화백의 자유분방한 그림에서 동백꽃과 함께 보이던 알록달록한 채색의 아늑하고 다사로운 집은 아니었다. TV도 없었고, 저녁상을 마주 할 여자도, 그림에서처럼 벌거벗은 여자도 없었다. 전시회 준비 때문에 대부분 그림을 서울로 보낸 탓인지 사방의 흰 벽은 집을 더욱 썰렁하게 보이게 했다. 교수직(추계예술대)도 버리고, 가족과의 삶도 포기하고, 친한 벗들과의 교유도 멀리한 채 그가 제주에서 선택한 생활은 수도자 같은 삶이다.
『1990년 안식년을 맞아 제주도를 왔다갔다한 것이 제주를 선택한 계기가 됐어요. 이듬해 다시 학교에 복귀했지만 제주도의 평화와 자유로움을 잊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92년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고 제주도로 떠났지요』
그때 제주행 비행기에 오르며 그가 되뇌인 말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 집착을 버려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살다보면 사사로운 일들로 끊임없이 갈등하게 됩니다.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쾌락과 고통, 분노와 절망, 집착과 무관심 등 늘 대립되는 감정에 휘말려 끊임없이 고통당해야 하지요. 이 양극의 감정,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살고 싶어 제주를 선택했어요』
『치우치지 않는 마음이 바로 내가 탐구하는 「중도(中道)」입니다. 갈등에서 벗어나야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지요』
『작가는 외로워야 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일이 외롭지 않고서 어찌 가능할까요』
이화백을 두고 파리 생활을 버리고 원시의 타히티로 숨어든 폴 고갱이라고 말한 평론가도 있다. 세속의 굴레에서 벗어난 그에게 제주도는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동백꽃, 찔레꽃, 돌하루방, 배, 노루, 새, 말, 물고기 등 작품 소재들이 그것이다. 그 많은 모티프들이 중도의 생활 속에서 자유로운 붓질로 그림에 담아지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찔레꽃, 쾌락을 즐기는 사람을 동백꽃, 증오하는 사람을 새, 고통받는 사람을 텔레비전,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을 물고기로 승화시켜 의인화하는 동안 나의 마음은 평상심에 가까이 다가서게 되죠』
중도의 세계는 곧 모든 존재가 자유를 누리는 세계다. 그의 그림 속에서는 하나의 공간 속에 인간과 물고기, 꽃, 새, 하루방이 함께 등장한다. 새가 날아다니고 물고기가 헤엄친다. 2-3층 누각엔 곧잘 여자가 TV를 보거나 춤추고 있거나 벌거벗은 채 남자와 정사를 나누고 있기도 하다. 때로는 동백나무 속에서 사람이 앉아 있기도 하고, 그 옆으로는 통통배를 타고 고기를 낚는 사람들의 모습 등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광들이 평면적으로 한 공간에 풀어 놓아져 있다. 『자연이 인간과 함께 평등하게 공존하는 광경을 그리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자유로운 화면 구성은 기법 또한 분방하게 표현되고 있었다. 한국화이지만 그의 그림에서는 검정 먹이 보이지 않는다. 밑그림에 방충효과를 위해 단지 먹이 쓰일 뿐이다. 장지에 먹을 칠하고, 다음 아크릴로 바탕색을 칠한 뒤 다시 그 위에 흰색이나 회색으로 두텁게 표면을 덮은 후 붓 대신 칼이나 핀으로 긁어서 이미지를 그려내는 방법이다.
최근 들어서 이화백은 표현영역까지도 자유롭게 넓혀가고 있다. 오색 천조각을 가지고 일일이 오리고 꿰매 작업한 거대한 삼베 보자기 꼴라주 작업, 세상을 떠난 친구를 애도하며 제작한 도자(향로와 제기) 작업 등 최근 들어선 회화뿐 아니라 꼴라주, 도판, 보자기, 입체작품 등까지 넘나들고 있다.
할일 없이 빈둥빈둥 사는 남자가 많다는 제주도. 백수가 많다는 제주도에서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살고 있는 듯 보였다. 그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질서, 「중도의 세계」를 영위하고 있었다. 『오후 5시 이전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아요. 그래서 저를 아는 제주 사람들은 오후 5시 이전에는 집도 찾지 않고 전화도 걸지 않지요』 밤에 외출했다가도 그는 오후 9시면 반드시 귀가한다. 서울에 있는 아내의 전화를 받기 위해서
25일부터 3월 19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이왈종 화백의 제주 생활 10년을 결산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장지그림, 도조, 부조 등 총 75점이 선보인다. 6-7㎙가 넘는 대형작품들도 여럿 보여준다.
▶약력
1945년 경기 화성 출생
1970년 중앙대 회화과 졸업
1974년 국전 문화공보부장관상
1983년 미술기자상
1991년 한국미술작가상
제주=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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