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27일, 아일랜드 여행이 시작됐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곳은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때까지 아일랜드 더블린은 내가 가보지 못했으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곳을 보고 느꼈기에 아일랜드는 비로소 존재하게 됐다. 이처럼 낯선 곳을 여행하는 일은 곧 한 겹의 새로운 삶을 사는 일이다.에메랄드빛 섬나라 아일랜드, 그곳은 발을 내딛자마자 곧바로 내 뇌의 한부분이 될만큼 강력한 인상을 선사했다. 물론 어떤 경험으로부터 받은 최초의 감동이 채 지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이 어떻게 좋은가를 논하는 건 조금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일랜드를 「보았다」기 보다 「발견했다」. 그만큼 그곳은 내게 독특한 문학적 분위기를 발산하는 신세계였다.
아일랜드는 작가들의 섬이다.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새뮤얼 베케트,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조나단 스위프트, 세이머스 히니…. 이들 모두는 아일랜드가 배출한 문학가들이다. 더블린 곳곳에서는 지금도 이들의 얼굴과 흔적을 쉽게 만나 볼 수 있어,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마치 잘 짜여진 문학기행을 방불케 한다.
켈트인들이 사는 아일랜드는 우리와 비슷한 역사와 정서를 지녔다. 우리가 인접국 일본의 지배를 받았을 때 아일랜드도 영국의 억압을 받았고, 독립과정에서 내전으로 지금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상태이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 유럽지도를 펴놓고 더블린에 동그라미칠 때 내 머리 속에는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가 마이클 콜린스가 맴돌았었다.
그러나 수백년간 이어져 온 투쟁의 역사와는 대조적으로 이 나라 집집마다에는 어리둥절하게도 온통 문인들의 흔적이 있었다. 어떤 극한 상황속에서도 사람의 마음 어딘가에는 평생을 두고 같이 있어 주는 것, 배신하지 않는 것, 떠나지 않는 것-그런 것을 추구하는 염원이 있는 모양이다. 아일랜드의 문학가들은 현실에 지친 아일랜드인들에게 그와 같은 염원이 되어주는 건가 보다.
돌아오는 길, 김포공항에 내려 세관을 통과하면서 아일랜드 문학박물관에서 본 오스카 와일드의 일화를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오스카 와일드가 뉴욕에 갔을 때 얘기다. 세관원이 『신고할 게 있느냐』고 묻자 그는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덧붙여한 말 『나의 천재성을 제외하고는』.
/신현정·LG전자 해외홍보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