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이야기」(래리 주커먼 지음)일상 속에 묻혀있는 것은 그 의미와 역사를 찾기가 여간 힘들다. 너무나 흔하기 때문에. 하지만 일상을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우리가 무심코 넘겨버린, 그러나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식탁에 오르는 감자도 그중의 하나다.
요리 재료인 감자에도 정치, 편견, 빈곤, 계급갈등, 인류의 생존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있다. 안데스산맥 잉카인들의 식량이었던 감자가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겪게되는 감자의 400여년의 운명은 유럽의 문화와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감자에 대한 태도는 각국의 민족성과 기호, 각계층의 입장이 농축돼 있기 때문이다.
유럽이 처음 접한 감자는 「마귀를 섬기는 부족의 불경스런 땅속 식물」 그 자체였다. 영국에선 감자를 먹느니 차라리 목을 매겠다던 사람들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달라졌다. 감자는 요리의 간편성과 연료부족으로 도시 노동자의 주식으로 각광받았다. 또한 일찍부터 주식으로 자리잡았던 아일랜드에선 「감자밭이 없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감자는 일상의 중요한 상징이었다. 하지만 감자의 의존도가 높은 아일랜드는 1845-1849년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감자의 비극도 발생했다.
감자에 대해 편견이 없었던 프랑스에선 가난한 사람들은 잿불에 감자를 구워먹고 부유한 사람들은 감자를 얇게 썰어 밀가루를 입힌 후 버터나 기름에 튀겨먹는 등 다양한 감자 요리법을 발전시켰다. 감자는 또한 유럽 왕실에는 최음제로, 가난한 노동자에겐 노동을 줄여주는 동시에 투자대상으로 다양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산업혁명과 인구폭발로 식탁에 보편화한 감자의 400여년 역사는 유럽의 문명사다. 저자 래리 주커먼은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중앙아프리카에서 활동했다. 이처럼 감자 하나에 천착해 깊이 있는 연구서를 낼 수 있는 지적 풍토는 물질만능주의로 인문학이 죽어가는 우리의 경우와 사뭇 대비된다. 주커먼이 「감자 이야기」 출간의 공으로 돌린 「감자의 역사와 사회적 영향력」의 저자 레드클리프 샐러먼은 감자 연구에만 40여년의 세월을 바쳤다. 우리의 빈약한 인문학 현실을 부끄럽게 한다.
배국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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