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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커스]정보맨의 2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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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커스]정보맨의 25시

입력
2000.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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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 인 블랙(Men in Black) - 베일 속의 사람들, 정보맨들의 생활『1993년에서 94년까지, 정말 치열했습니다. 당시 삼성의 자동차 진출을 놓고 기업 정보조직간의 사활을 건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상대방의 동향을 파악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역정보를 흘리기도 했지요. 전 정보맨이 동원된 총력 「정보공작」이었습니다. 심지어 대학 교수들을 동원해 삼성의 자동차 진출이 타당하다는 논리전을 펴게 하기도 했습니다. 현대 기아 대우가 자동차공업협회를 중심으로 한 편이 됐고 삼성이 반대 편에 서 있었죠. 평소 정보맨들이 관리하던 인맥을 이용해 로비스트로 나서기도 했습니다』(A그룹 B과장).

현대사회에서 정보는 힘과 부의 원천이다. 한 발 먼저 챙긴 정보는 상대방의 목줄기를 서서히 옥죄고 때로는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다. 「어둠 속의 사람들」, 정보맨의 세계를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지난 12일 새벽 1시. 서울 서초동 정형근(鄭亨根) 한나라당 의원 집. 긴급체포서를 들고 들이닥친 검찰 수사관들과 한나라당 의원 및 당직자 30여명이 10여평 남짓한 안방 앞 거실에서 뒤엉켰다. 보도진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북새통. 바닥에는 정의원에게 전송된 정세분석보고서 10여장이 구둣발에 짓밟힌 채 흩어져 있었다. 정의원의 보좌관들은 이 아수라장의 와중에서도 필사적으로 자료를 챙겨 사라졌다.

이들 자료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작성자가 민간인이건 기관 소속이건간에 「정보맨」인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양지로 노출되는 순간 생명을 잃게 된다. 물론 「선수들」끼리야 뻔히 알겠지만….

『공기처럼, 물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해야 진짜 정보맨입니다』 정보맨은 자신을 철저히 감춘다. 하지만 고급정보일수록 「사람」한테 나오기 때문에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정보를 주면서라도 먼저 접근한다. 『상대방이 「저 사람은 정보맨이다」는 생각을 하면 정보를 얻기 힘듭니다. 정보원 머리 속에서 내가 정보맨이라는 생각이 사라진 순간 고급정보가 나오기 시작하지요』(C그룹 D과장).

이런 노력의 결과는 「대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후일 거물급 국회의원을 사법처리에 이르게 만든 한 사건도 정보맨의 「직보」에서 시작됐다. 당시 서울 G경찰서 정보과 형사로 있던 H씨의 증언. 『신경 써서 관리하던 한 고급아파트 경비원이 「동생, 밤 늦게 유명 정치인이 드나들어」라고 귀띔해 주더군요. 잠복 사흘만에 이 아파트를 찾은 정치인을 목격했고 이어 몇몇 연예인이 드나드는 것도, 집 주인이 의상실을 운영하는 외국인 현지처라는 사실도 알아냈어요. 일주일을 지켜본 후 떨리는 마음으로 「직보」를 올렸지요』

민간과 국가기관을 막론하고 정보맨들의 조직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은 남다르다. K기업 L과장은 『1980년 이란·이라크전 발발이나 89년 12월 독재자 노리에가 체포를 위한 미국의 파나마 침공 등 엄청난 사건도 모두 관변 정보조직보다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팀이 먼저 알았다』며 『특히 외국에서는 대사관 무관처럼 공인된 「백색」 정보맨이든 위장한 「흑색」 정보맨이든 기업 정보맨들에게 귀동냥을 한다』고 전한다.

정보맨들은 정보보고의 압력에 시달리는 탓에 공식·비공식 정보거래도 마다하지 않는다. 기업이나 증권가의 정보맨들이 기관 정보요원들에게 제공하는 당근은 기업 내부정보나 주식정보. 기관 정보요원들은 대신 기업·증권 정보맨들의 출입이 어려운 정부 부처내 소문이나, 정치인과 고급 공무원들로부터 얻은 맨투맨 정보 또는 고위층의 멘트를 흘려주기도 한다.

활동영역이 겹칠 경우 다툼은 불가피하다. 증권사 정보맨 N씨는 『가끔 증권사 정보맨이 허위사실 유포를 이유로 구속되는 것은 민간 정보조직에 대한 국가 정보조직의 경고』라고 단언한다. 현 정부 들어서는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을 신설하며 정보기능이 크게 강화된 검찰, 대통령 직보체제가 회복된 경찰과 국정원간의 정보다툼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는 것이 정보맨들의 공통된 평가다.

현재 그룹 수준의 기업에서 활동하는 정보맨은 평균 100명 안팎. 200명까지 활동중인 그룹도 있다. 또 증권사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기업이면 10명 안팎의 정보맨을 가동시키고 있다. 여기에 사설 정보지의 정보맨과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기관 정보원을 합치면 2만여명이 정보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허위, 역정보 난무 속 진짜 흐름 꿰야..

대우증권 애널리스트 이승구씨

서울 여의도.

국회와 각 정당이 몰려 있고, 증권사와 기업체가 몰려 있는 권력과 돈의 중심지다. 따라서 매일같이 새 정보가 만들어지고 유통된다. 정보맨들에게는 치열한 정보전쟁터가 아닐 수 없다. 국가정보원·경찰·검찰 등 국가기관은 물론, 대기업·증권사·정당 등의 정세분석팀, 정치인 개인 정보조직, 사설 정보지 소속 정보맨들이 이 일대를 기웃거리며 정보사냥에 열중한다. 정치권에서 생산하는 음해성 괴문서, 각종 「리스트」의 산실도 이곳이고, 「뜬 소문성」 정보지의 고향도 이곳이다.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분석가) 이승주(李昇周·34)씨는 여의도에서 암약하는 보통 정보맨과는 사뭇 다르다. 이씨는 「정보=돈」인 증권시장에 철저한 분석을 통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하루 15시간 정보 수집·분석에 매달린다. 「증권정보는 뜬 소문」이라는 보통사람들의 「편견」을 없애는 것이 그의 꿈이다.

지난 1994년 대우경제연구소에 입사해 1년동안 하루 18시간 이상의 고된 훈련을 거친 이씨는 요즘도 하루 종일 정보와 씨름한다. 오전 7시30분 출근해 조간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업계 동향을 파악한 후 동료 애널리스트와 분석 정보를 교환하는 아침회의를 한다. 여기서 나온 정보를 증권사 각 지점과 기관투자가들에게 전자메일로 보내면 장이 끝날 때까지 전날 끝마치지 못한 수집 자료의 분석에 매달린다. 오후 3시께부터 저녁까지는 기업 관계자나 다른 정보맨들을 만나거나 주기적인 「정보모임」을 가지며 정보수집 활동을 한다. 새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하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인데다 정보분석 결과가 매일 시장에서 검증되고 1년에 두 차례씩 순위가 매겨지는 탓에 중압감도 크다.

이씨는 특정조직이 아니라 수많은 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자신이야 말로 진정한 정보맨이라고 자부한다. 그는 『여의도에서 생산되는 사설 정보지와 기업 정보지는 검증되지 않은 내용 혹은 특정한 의도를 담은 역정보까지 무차별적으로 담고 있다』고 비판하며 『조각조각 흩어진 자료에서 흐름을 잡고 또 다시 과학적 분석을 거쳐 탄생한 객관적·중립적 정보야말로 모두에게 유용한 진짜 정보가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촘촘한 협조망 바닥을 훑는다.

서울 A경찰서 정보과 B형사의 하루

『떡볶이 노점상부터 구청장, 정치인들까지 못 만나본 사람도, 못 만날 사람도 없습니다』. 서울 A경찰서 정보과 학원반 B형사. 정보형사 13년째인 베테랑 정보맨이지만 늘 초긴장 상태에서 생활한다. 담당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24시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풍부한 인력으로 광범위하고도 다양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경찰의 장점이 이전보다 인정을 받으면서 경찰 정보 기능이 활성화하고 있다. 경찰청 정보국이 매일 오전 산하 2과(정치 담당), 3과(경제), 4과(사회·문화) 및 전국에서 수집한 정보를 추려 고위층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정보형사에 대한 독려도 그치지 않는다.

정보형사들은 유능한 정보맨의 관건을 「협조망」(정보원을 뜻하는 예전의 「망원」이 「협조자」로 바뀌었다) 짜기로 본다. 정보형사 한사람이 관리하는 사람은 보통 200여명에 이른다. B형사는 『망이 촘촘할수록 좋은 정보가 걸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각계 각층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는다』고 말한다.

이근안 전 경감 집의 동향을 파악한 협조자는 인근 주민이었다. 서울 D경찰서 정보과장은 『서울 800여명, 전국 1,400여명의 정보형사들이 건져올린 정보는 등급에 따라 분류돼 보고선이 달라진다』며 『특히 선거결과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우리 경찰조직』이라고 자랑을 감추지 않는다.

지난 17일 밤 서울 E호텔에서는 한나라당 최종 공천심사가 열렸다. 관할 경찰서 E호텔 담당 정보형사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첩보를 듣고 뒤늦게 달려갔지만 끝내 심사가 열리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평소 협조자 관리에 실패한 탓이다. 이처럼 담당 구역의 주요사건을 놓치는 일은 치명타지만 반대로 특출한 실적을 올리면 정보형사의 꽃인 지방경찰청이나 경찰청 정보요원으로 발탁된다. 이후 경력을 쌓아 서울 신촌 근처의 사무실 또는 사직동팀으로 일컬어지는 경찰청 조사과에서 근무하게 된다.

경찰청 조사과 배속 현황자료에 따르면 직원 30명 모두 일선 경찰서에서 「대박」을 터뜨리거나 「직보」를 여러차례 했던 평균연령 40세의 노련한 정보요원. 98년부터 99년 9월말까지 사직동팀에서 타 부서로 영전한 26명중 순수한 업무유공으로 훈·포장을 받은 사람이 16명이나 되는 것도 능력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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