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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국민 계(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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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국민 계(契)

입력
2000.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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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굴리는 방법들이 마땅치 않던 시절, 우리사회의 가장 보편적 재테크 수단은 계(契)였다. 주부 동창 이웃들간의 계는 친목도 겸해 목돈마련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81년 당시 가정주부의 85%가 계를 한다는 저축추진중앙위의 조사결과도 있다. 동네의 미장원 다방 식당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계모임의 정경은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재테크의 길이 다양해진데다 사람들의 만남 자체가 메말라가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미국에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마젤란」이라는 세계최대 규모의 뮤추얼 펀드가 있다. 국내에서도 요즘 간접투자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뮤추얼펀드는 그 자체가 상법상 주식회사이고 투자자들은 주주가 되는 형태다. 또 투자수익 활동이 끝나는 시점과 동시에 해체된다는 점에서 계원과 계주로 구성돼 한시적으로 같은 배를 타는 우리네 계와 진배없다. 그러고 보면 마젤란 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계인 셈이다.

■국내에서 금명간 거국적인 「벤처펀드」가 민·관 협력으로 발진한다는 소식이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최소 1조원대의 뮤추얼 펀드를 조성해 벤처기업들에 투자하려는 것이다. 정부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 같다. 벤처 열풍에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중산 서민층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반벤처 정서를 이완하고 우량 벤처기업들을 육성하려는 것이다. 그같은 취지는 나무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만약의 사태를 예상하게 되면 그만 아찔해진다. 80년대말 국내 최초의 국민주 보급 선풍에 호주머니를 털어 참여한 국민중 대다수가 맛본 것은 깡통계좌의 허탈과 분노였다. 벤처투자는 더욱이 고수익과 고위험이 병존하는 아슬아슬한 머니게임이다. 국내 경기가 미국의 나팔소리에 섰다 앉았다 하는 현실에서 그런 불가측성은 몇 곱절 높아진다. 재수없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거국적 벤처 계가 풍비박산하는 불상사가 없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송태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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