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이나 해체냐』 비자금 스캔들로 파산위기에 직면한 독일 기민당(CDU)이 16일 볼프강 쇼이블레 총재의 사임 카드로 위기탈출을 모색하고 나섰다.그러나 쇼이블레는 그동안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의 사임 자체가 당 재건의 발판이 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디 벨트지는 이날 쇼이블레의 사임을 이끌어 낸 15일의 특별회의를 정치적인「반란(putsch)」으로 묘사했다. 부관참시(剖棺斬屍)일 뿐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는 아니라는 얘기다.
기민당의 행로는 지난해 11월초 군수업체 뇌물수수사건이 터진 이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메가톤급 태풍으로 변모한 비자금 스캔들로 「독일 통일의 영웅」 헬무트 콜 명예당수가 16년의 총리 집권을 포함, 41년에 걸쳐 화려했던 정치인생의 막을 내렸다.
하지만 파문은 당 전반으로 퍼져 최근 여론조사에서 기민당에 대한 불신이 70%에 육박하고, 급기야 의회로부터 4,130만마르크(약 239억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으며 파산위기에 직면했다. 사민당 출신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잇단 실정과 인기하락으로 지난해 6차례 주의회 선거에서 모두 승리, 정권탈환의 의욕을 불태우던 지 불과 4개월여만에 1945년 창당된 기민당이 해체위기에 놓인 것이다.
현재 당내에선 사태해결을 둘러싼 신진세력과 구세력간 이견차 등으로 혼란만 난무하고 있다. 또 쇼이블레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베른하르트 포겔 튀링겐주 총리의 진로 역시 불투명해지는 등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더구나 검찰의 비자금 수사는 초기단계에 불과해 자중지란이 계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넘어서는 당 혁신이 없는 한 1990년대초 총체적 부패로 사라진 이탈리아의 기민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비자금 파장은 기민당에 국한되지 않을 전망이다. 언론들의 잇단 폭로로 집권 연정인 사민당(SDP)과 녹색당의 일부 간부마저 뇌물성 편의를 제공받은 혐의가 제기돼 국민의 정치 혐오감이 커지고 있다. 밀실정치를 해온 콜과 같은 구정치인들은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을 감안할 때 독일 정계의 대대적인 개편으로 확대될 수 있는 셈이다.
비자금 스캔들 기민당이 집권기간에 무기 중개상으로부터 100만마르크를 뇌물로 받았다는 지난해 11월의 언론보도로 불거졌다. 이후 군수 뇌물에 콜 전통리의 비밀계좌, 정유회사 매각 커미션과 스위스 비밀계좌 등이 기민당의 재정과 얽히며 하나씩 등장했다. 지금까지 콜 전총리가 200만 마르크의 정치자금을 비밀리에 받았고, 쇼이블레도 무기거래상으로부터 10만마르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희경기자
hkjung@hk.co.kr
■거짓말로 물러나는 獨통일주역 쇼이블레
볼프강 쇼이블레(58) 기민당 당수가 무너진 건 거짓말 때문이었다.
쇼이블레는 지난해 말 자신의 정치적 버팀목이었던 헬무트 콜 전 총리로부터 촉발된 비자금 불똥이 올 초 자신에게 튀자 『나는 깨끗하다』면서 모든 허물을 콜에게 돌렸다. 하지만 그의 고백은 곧 거짓말인 것으로 밝혀졌다. 쇼이블레는 며칠후 『모든 것을 털어놓겠다』면서 1994년 군수업체 티센의 무기중개상 슈라이버로부터 10만마르크(6,000만원)를 받았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그의 변명 마저 축소·조작된 것이었다. 지난달 15일 디 벨트지는 쇼이블레가 1997년 스캔들을 우려한 나머지 회계장부를 조작하도록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다른 언론은 지난달 31일 쇼이블레가 슈라이버를 1995년에도 만났다고 확인했다. 쇼이블레는 이때도 『기억하진 못하겠다』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국민들은 더이상 그의 거짓말에 속지 않았다.
쇼이블레도 콜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콜로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은 그는 「콜 시스템」으로도 통하는 당 운영체제를 답습했다. 또 자신에 대한 비난을 「마녀사냥」으로 맞받아쳤으나 끝내 굴복해야 했던 콜처럼 민심에 머리를 숙여야 했다.
쇼이블레는 강철같은 의지의 소유자로 통했다. 1987년 총리실 장관을 지내면서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의 서독 방문을 성사시켰고 1989년 4월부터는 연방내무장관을 맡아 사실상 통일과정 전체를 주도했다. 그는 1990년 유세도중 정신이상자가 쏜 총탄에 맞아 하체가 마비됐지만 정치적 야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몰락은 아무리 큰 업적을 남긴 정치인도 부패하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말할수 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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