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자정을 넘겨 사무실을 나오며 『생각보다 쉽게 끝났네』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곤 스스로 이런 여유로워진 반응에 놀랐다. 그간 의식을 못하고 있었을 뿐 내 자신이 많이 변해 있었던 것이다.대리가 될 때까지는 주로 상사의 지시에 따라 큰 일을 처리했다. 가끔씩 「나는 조직의 부속품」이라는 한탄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중 새 이사님과 일하게 됐다. 그 분은 「보고받는 시간보다 자신이 듣고 배운 것을 부하직원에게 전수하는 시간이 더 길어야 한다」는 걸 모토로 삼고 있었다. 함께 일하면서 동기들보다 먼저 통합적 사고에 눈 뜰 수 있었다.
이사님은 능력이 인정된 사람들에 대해선 「스타 만들기」를 통해 자신감을 갖고 더 큰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내가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밤샘 작업이나 일요일 근무도 마다하지 않은 것은 그런 배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느 순간 일종의 깨달음 같은 게 생겼고, 먼저 프로젝트를 구상해 추진하는 등 업무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주도권을 잡아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9년6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후에야 비로소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불안감을 씻고 자유로워졌다. 직장인의 성공은 50%가 자신의 노력과 체력, 50%는 「상사 운」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관리자들이 여성 인력에 대해 「내가 오래 데리고 있을 사람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능력 양성에 공들이기를 회피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분위기는 어느 시점에 가면 한계를 느끼고 조직을 떠나도록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러다 보니 왕성한 활동으로 조직의 중추역할을 해야 할 간부직 여성들은 현장에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개각 때마다 적정선의 여성장관 배치는 이제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런 외적인 변화가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인력의 활용이 고도화한 양 현실을 오도시킬까 걱정스럽다. 현장에서부터 「사람 키우기」가 되지 않는다면 뿌리없는 나무처럼 늘 같은 자리만 맴돌아야 할 것이다.
선진기업에서 부하 직원의 능력이 관리자 평가와 직결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막연히 의식의 변화에만 기대하기 보다는 각 기업들이 관리자 평가항목에 중장기 여성인력 양성 결과도 포함시킨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김기선·삼성전자 디지털영상사업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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