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란 극복돼야 할 과거인 동시에 함께 가야 할 현재다. 일본의 두 모습을 우리 연극으로 본다. 몽환적 감성, 통한의 역사가 공존한다.단순한 원형 무대에 가로등과 시계만이 배경의 전부. 지극히 깔끔한 무대가 인상적인 극단 백수광부의 「고래가 사는 어항」은 낯설지 않은 일본 극작가 기타무라 소오(北村 想)의 최신작(1998년)이다.
「새봄을 여는 아름다운 발라드 연극」이라며 극단측이 내건 카피에 과장은 없다. 가로등을 켜고 시계 태엽을 감는 일을 해 오던 소년 클레오가 어느날 실수로 그 일을 다 못 하자, 암흑천지가 된 세상에는 갖가지 범죄가 날뛴다. 망연자실해 있던 클레오에게 거지 아저씨가 위로와 사랑을 전한다. 소년은 힘을 내 가로등을 고치러 떠난다는, 그야말로 동화같은 이야기다.
「키스」 「내일 만나기에 우리는 너무나 사랑했었다」 등 서정적 무대에 강한 연출자 김동현(34)씨는 『경쾌한 화법으로 관념적 주제를 풀어헤쳐, 시간을 마음대로 구사하는 극작술에 큰 매력을 느꼈다』며 『특히 「호기우타」에서 보았던 섬세한 무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기우타」는 1999년 서울연극제에서 해외초청작으로 공연돼 호평 받았다.
무대만큼이나 깔끔하게 처리된 저작권 문제 또한 인상적. 지난해 11월 극단 백수광부는 저작권상의 시비를 없애기 위해 원작자를 직접 만나 『저작권료 를 받지 않고, 작품에 대한 처분을 전적으로 맡긴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극단측은 『이제 일본에도 좋은 희곡만 있다면 적절한 번안을 거쳐 상연할 것』이라 밝혀, 이번 무대가 출발점임을 분명히 했다.
기타무라는 최근 극단 백수광부측에 공연의 성공을 기원하는 편지를 부쳐오기도 했다. 무용음악가 김태근의 배경음악에 김창기의 조명 디자인이 더해졌다. 서영화 오달수 등 30대 초반의 배우 10명이 꾸민다. 3월 3일~4월 2일 연우소극장. 화~목 오후 7시 30분, 금~일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02)764_8760
한편 극단 고향의 「메이드 인 저팬」은 폭력과 섹스가 범벅된, 하드보일드한 한·일 관계가 압축돼 있다. 「배정자를 아시나요?」라는 부제대로, 이 연극은 일본서 교육받은 조선 여인 스파이 배정자의 삶을 그린다.
김옥균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가 된 배정자. 이토의 정부이자 이토의 밀정으로 고종에게 접근, 총애까지 받는 그녀. 이 연극은 영화로 미화되기도 했던 그녀의 이중적 삶에 들이대는 메스다. 이토에 의해 철저히 일본식으로 거듭난(메이드 인 저팬) 그녀가 81세로 죽기까지 저질렀던 밀정 행위에 대한 연극적 단죄다.
작품의 저변에는 『배정자가 미화돼 행여 멜로 드라마가 돼 버리지나 않을까』하는 연출자의 걱정이 깔려 있다. 그래서 심씨는 을사오적과 일본 자객을 오브제화하거나, 6개의 중간막을 설치해 일장기나 대포의 모습을 투영시키는 등의 서사극적 수법으로 냉정한 역사극임을 일러 준다. 상연 개시일을 3·1절로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명한 속옷 연기 등 말그대로 몸을 던지는 요화 배정자 역에 원영애(38), 노회한 이토 히로부미에 강신일(41), 무력한 고종에 이승호(51) 등 노련한 트로이카의 호흡이 기대된다. 김정숙 작, 임흥식 박기찬 김춘기 등 출연. 3월 19일까지 동숭홀. 월-수 오후 7시 30분, 목-일 오후 4시 7시 30분. (02)766-8679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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