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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6)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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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6) 딴지일보

입력
2000.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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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딴지일보격주간 인터넷 신문 딴지일보(http://ddanji.netsgo.com)에 접속하면 그 첫 화면에 이 신문의 소개를 겸한 「비장」하고 익살맞은 선언이 나온다. 『본지는 한국 농담을 능가하며 B급 오락 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 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 저널이며, 인류의 원초적 본능인 먹고 싸는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우끼고 자빠진 각종 사회 비리에 철저한 똥침을 날리는 것을 임무로 삼는다. 방금 소개말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이, 본지의 유일한 경쟁지는 썬데이 서울. 기타 어떠한 매체와의 비교도 단호히 거부한다』

여기서 「한국 농담」이란 월간지 「한국 논단」을 가리킨다. 딴지일보가 보기에 「한국 논단」에 실린 글들은 다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짧은 소개말에서도 딴지일보는 「한국 논단」이라는 극우 매체에 대해서 의뭉스럽게 「똥침」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딴지일보의 무기는 똥침이다. 그러면 이 신문의 목표는 무엇인가? 소개말 밑에는 「딴지 발행인 겸 딴지 그룹 총수」의 직인이 찍힌 이 신문의 목표랄까 사시가 밝혀져 있다. 『21세기 명랑 사회를 졸라 향하여…』

그러니까 딴지일보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명랑 사회」다. 60년대의 대중 잡지 「명랑」을 생각나게 하는, 너무나 순박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이 「명랑 사회」라는 구호 안에는 사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모든 불합리에 대한 격렬한 적개심이 응축돼 있다.

이 명랑 사회는 골치가 안 아픈, 또는 적어도 덜 아픈 사회다. 지금 40대 이상의 사람이라면 「명랑」이라는 두통약을 기억할 것이다. 한 때 한국 사람들은 머리가 아프면 일단 명랑을 복용했다. 머리의 통증이 가시고 명랑해지기 위하여. 그렇듯 딴지일보도 통증을 가시게 해서 사람들을 명랑하게 만든다.

이 신문은 한국 사회를 우울하게 만드는 모든 부조리에 대해서 신랄한 패러디와 풍자의 똥침을 날림으로써 그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이 신문의 목표는 우리 사회를 합리성의 규율 안으로 데려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딴지일보가 창간된 것은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다섯달 쯤 된 1998년 7월 14일이다. 이른바 「암에푸」 체제 하에서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시기다.

그래서 이 신문 초창기의 주요 등장 인물 가운데는 『문민 찻집의 실패로 우리 동네 지역 경제 전체를 저당잡은 고리대금업자』 암에푸 씨가 포함돼 있다. 물론 암에푸 씨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은 「궁민 다방」의 왕마담 언니 김데중, 과거 「문민찻집」의 주인 기명사미, 자민뇬 스텐드빠 주인 김쫑필, 딴나라 캬바레 홀메니저 이헤창 같은 이들이다.

이들과 함께 딴지일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사람은 아니지만, 「좃선벼룩」이다. 이 「좃선벼룩」은 우익멸공 생활정보지다. 딴지일보를 읽다보면, 이 신문이 소개말에서 자신의 유일한 경쟁지를 「썬데이 서울」이라고 선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심 경쟁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좃선벼룩」이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다.

딴지일보 지면 안에서의 「좃선벼룩」은 물론 현실 속의 조선일보인데, 딴지일보는 조선일보의 최장집 교수 「사상 검증」 시도에 대한 반론, 외신 왜곡 인용 사례의 적시 등을 통해 이 신문에 똥침을 날리면서 「명랑 사회 건설」에 매진해 왔다.

「졸라」 「열라」 「씨바」 「조또」 「쉐이」 「넘」 「뇬」 「당근」 같은 「비속한」 통신 언어가 난무하는 딴지일보는 그 외양과는 달리 전혀 비속하지 않은 신문이다. 사실 이 신문은 현실 세계든 사이버 세계든을 막론하고 한국에서 나오고 있는 신문·잡지들 가운데 매우 진지한 매체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하다. 딴지일보는 연예면이나 대중문화면마저 진지하다.

정확히 말하면 딴지일보는 연예나 대중문화를 그것 자체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늘 맥락 속에서 본다. 백지연씨 명예훼손 소송 사건의 전말에 대한 상세한 보도나, 영화 속의 비과학적 장면들을 지적하는 시리즈물 같은 것은 이 신문이 자신의 역할 가운데 하나를 계몽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신문은 진지한 체 하는 기존 언론과 사회에 그 「비속한」 말투로 똥침을 날림으로써, 기존 언론과 사회가 얼마나 비속한 지를 까발린다.

딴지일보의 발행인 겸 「딴지 그룹 총수」인 김어준(33)씨가 이 신문의 1호를 발행한 날 방문자는 딱 두 명이었다. 그러나 이제 방문자 수는 1,850만명에 이른다.

상근 기자 네 사람과 디자이너 한 사람 외에 50여명의 국내외 특파원들이 이 신문의 제작을 거든다. 속보성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 큰 흠이기는 하지만, 딴지일보는 재미있고 유익한 신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 신문인지를 아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지금 당장 접속해서 읽어보는 것이다.

『마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아카이아인들이 모여 Interactive하게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아 그들만의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던 그 시절처럼, 인터넷이라는 사이버공간에 전 세계인이 모여들고 스스로들 Media의 주체가 되어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이제 새로운 Digital Athen의 시대가 열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어떤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가지만은 분명한 것 같다.

아테네에서 발언권 없이 침묵했던 것은 노예밖에 없었듯이 이 도래할 신시대의 시민이 되려거든 자신의 Digital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딴지일보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름대로 제 목소리 한 번 내보려는 작고 희한한 지랄삥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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