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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제 장례식에 놀러오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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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제 장례식에 놀러오실래요?'

입력
2000.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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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한 삶의 일상에서 남다른 의미들을 발견하는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의 저자 로버트 풀검이 장례식 얘기를 꺼냈다. 34년 동안 목사로 일한 그도 어느덧 죽음을 죽음을 준비해야 할 나이인가. 87년부터 모든 일을 손놓고 사색을 즐기는 그가 어느 「장례식」에 우리를 초대한다.초대장에 이렇게 적혀 있다. 『결혼식과 출생식에 초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제 여러분과 함께 장례식에 가려고 합니다. 훌륭한 삶을 기림과 아울러 죽음에 잘 대비함으로써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정말 멋진 장례식입니다. 아무도 검은 옷을 입고 오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는 여든 살에 세상을 떠난 전직교사 마틴 카터의 장례식을 보았다. 목사도 검정차림이 아니다. 모두가 밝은 빛깔의 봄옷이나 꽃무늬 옷을 입고있다. 전통 재즈밴드가 느리지만 춤박자가 느껴지는 연주를 하며 샛길로 걸어오고, 목사가 「마사가 보내는 글」을 읽는다. 『지금까지 저는 멋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제 인생에 베풀어주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문앞에 죽음이 어른거리면 저는 따라나설 것입니다. 춤신발로 바꿔 신고 훌쩍 떠날 겁니다』

목사는 마사가 죽음이라는 말라 비틀어진 찌꺼기가 아니라, 삶이라는 훌륭한 포도주를 남겨 놓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며 로버트 풀검은 죽음도 삶의

중요한 부분이며, 잘 죽는 것이 잘사는 삶의 정점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장례식」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의식(儀式)이다. 알고보면 인생은 그 의례, 의식의 연속이다. 생일 입학식 졸업식 동창회 결혼식 장례식…

하루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첫 시간을 아주 중하게 보내는 습관도 소중한 의례다. 의례·의식은 깨어있음을 나타내는 한 방법이며, 일상을 거룩함으로 바꾸어 놓고, 신성한 시간을 만들어 준다. 그것에서 사소한 의미라도 발견한 순간 삶은 성스러워지고, 자유로워진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로버트 풀검은 그것을 이웃들의 소박한 삶과 자신의 일상 경험에서 확인한다. 그는 마음이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면 자신이 묻힐 묘지를 찾아 청산의 의례를 배우며, 동창회에서 친구들이 추억하는 첫 투표권행사, 첫 섹스의 경험에서 순간순간의 의례가 삶 전체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이해한다.

인간은 밤마다 어둠에 묻혀 죽고, 새벽녘 다시 눈을 떠 살아난다. 날마다 보던 사람을 못보고, 한번 지나가고 마는 길, 풍경은 모두 죽은 것이나 같다.

우정, 사랑이 끝나도 이것은 하나의 죽음이다. 때문에 새로운 친구와 사랑을 찾아나서기 위해 문턱을 넘어서는 것은 되살아남이다. 삶 속에 늘 함께 하는 죽음과 부활. 그래서 그에게 장례식은 삶의 축제인지 모른다. 즐겁게 『제 장 례식에 놀러오실래요?』라고 말할 수 있는. 원래 우리의 전통 장례식도 같은 의미였지 않았는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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