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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메인 이봉주는 말을 잊었다

입력
2000.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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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는 눈물외에는 할말을 잊었다. 오인환코치와 함께 그는 도쿄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한뒤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쏟았다. 지난 3개월여간의 지옥훈련과 마음고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엉엉」 목놓아 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는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 『죽을 각오로 레이스를 펼치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의 다짐대로 한국신기록을 수립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끈질긴 근성과 승부욕이 만들어낸 「도쿄 쾌거」였다.

지난해 10월 코오롱과 결별한 이후 이봉주가 과연 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을 그는 도쿄레이스로 일소했다. 한국마라톤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정봉수감독의 품을 떠나 마침내 홀로서기를 이뤄낸 것이다.

코오롱과의 결별로 제대로 지원받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그는 경남 고성에서 차가운 바닷바람과 씨름하며 하루 40-50㎞를 달리는 지옥훈련을 이겨내고 또다시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봉주의 마라톤인생은 「오뚝이」 그 자체였다. 충남 천안출신으로 광천중 3년때 다소 늦은 나이로 육상에 입문한 이봉주는 「달리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신체적 핸드캡으로 부상과 슬럼프에 시달렸지만 오기와 지구력 하나로 버텨왔다.

1990년 전국체전이후 마라톤 풀코스 완주만 무려 22차례. 이봉주만이 할 수 있는 끝없는 레이스의 연속이다. 왼발이 5㎝나 큰 짝발때문에 운동화가 피로 물든 처절한 레이스를 펼치기도 하고 눈썹이 눈을 찌르고 땀이 눈으로 들어가는 등 매 레이스가 악전고투속에 이루어진 불굴의 레이스였다.

마라톤천재 황영조의 은퇴이후 기대주로 떠오른 이봉주는 1996년 7월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남아공의 조시아 투과니에게 눈앞에서 월계관을 내주며 눈물을 삼켰다.

이후 무릎부상에 시달리며 슬럼프에 빠졌지만 1998년 로테르담대회에서 황영조의 기록을 25초 앞당긴 한국기록(2시간7분44초)으로 화려하게 재기했고 여세를 몰아 방콕아시안게임 우승을 일구어냈다.

하지만 다시 왼발 부상에 시달리며 지난해 4월 런던마라톤에서 2시간12분11초(12위)로 부진한 성적을 거두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부상치료를 겸하던 그는 코오롱파문의 여파속에 은사 정봉수감독과 결별하는 대결단으로 주위의 우려와 염려를 자아냈지만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한국마라톤의 희망」임을 증명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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