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재의 직무를 규정한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규약 제13조에 따른다면 총재는 프로야구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있다.하지만 1982년 프로야구출범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프로야구선수협의회 파동과 제8구단창단 문제로 바람잘날 없는 야구판에 총재의 존재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1998년 12월8일 우여곡절끝에 12대 커미셔너에 취임한 박용오씨는 여러모로 상징적인 존재다. 초대커미셔너인 서종철씨를 시작으로 11대 정대철씨에 이르기까지 KBO총재는 하나같이 낙하산 인사였다.
문화관광부의 무언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최초로 민선총재로 뽑힌 박용오씨는 역대 총재들과는 출발점 자체가 달랐다. 두산 베이스의 구단주를 역임,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하고 많이 알고 있는 그였기 때문이다.
박총재의 취임일성은 『침체된 프로야구에 활기를 불어넣겠습니다』였다. 그러나 취임 1년 3개월이 된 지금 그의 취임일성을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없다. 아니 활기는 커녕 제대로 되는 일 하나 없다는 게 야구계 일각의 주장이다. 11일 이사회 결정과정을 지켜본 야구인들은 『총재는 무엇하러 있는 지 모르겠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박총재가 수장으로 취임한후 프로야구는 구단이기주의가 더욱 팽배해졌다는 게 일반론이다. 특정현안이 특정구단들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된 게 한둘이 아니다.
선수회출범을 촉발시킨 자유계약(FA)제도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처음 도입된후 각 구단의 이해가 엇갈려 무려 세 차례나 개악됐다. 총재는 아무 힘없이 끌려만 다닌 셈이다.
그 결과 대다수 선수들은 구단과 KBO에 대해 공분했고 선수회라는 결사체를 구성하는 강수를 두게 된 것이다. 『선수회를 출범시키면 올시즌 프로야구를 안하겠다』던 박총재를 보는 야구계의 시각이 그리 편치만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차리리 힘있는 낙하산 총재가 버티고 있었더라면 구단사장의 발호도 덜 했고 선수회문제도 잘 처리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는 상황이다.
지금같은 시기에 있으나 마나한 총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는 것을 박용오총재가 아는지나 모르겠다. /정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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