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족보가 있듯이 모든 땅에도 뿌리가 있고 고유의 이름이 있는데 개발논리에 치우쳐 이런 연구가 소홀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20여년간 지명의 유래를 연구하며 잊혀진 지명을 발굴하고 잘못된 지명을 바로 잡는 작업을 해 온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지명연구위원 김기빈(金琪彬·53)씨는 역사연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지명연구라고 강조한다.
김씨가 지명연구를 시작한 배경은 특이하다. 1980년 국립지리원에서 지도담당사무관으로 지도편찬작업을 하던중 지도상의 지명이 잘못 표기되거나 개울가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두고도 양쪽 마을사람들이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발견하고 체계적인 지명연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
그는 이후 각종 문헌과 고서를 이잡듯이 찾아 연구하는 한편, 틈만 나면 전국을 돌며 지역유지들을 만나 지명에 대한 유래를 모았다. 이를 토대로 80년대 중반 모일간지에 6년동안 지명유래와 관련된 글을 1,000여편이나 연재하기도 했다.
김씨는 『이 기간동안 각 지역 주민들이 마을유래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제보하는가 하면 틀린 부분을 지적해주어 많은 보탬이 됐다』고 회고했다.
82년 고향인 전남 고흥지역의 지명유래를 연구한 책을 자비로 출판한 김씨는 84년부터 89년까지 「한국의 지명유래」라는 제목으로 남한은 물론 북한지역의 지명까지 총망라한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90년대에 들어와서는 「600년 서울 땅이름이야기」「일제에 빼앗긴 땅이름을 찾아서」「역사와 지명」 등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지명연구서적을 펴냈으며 지난 해에는 분당신도시의 지명 1,200여개를 알기쉽게 정리한 「분당의 땅이름 이야기」를 펴냈다.
김씨는 『서울의 중랑구는 원래 「중량」이 올바른데도 아직까지 일제시대에 붙혀진 중랑으로 표기하는 등 잘못된 이름들이 비일비재하다』며 『지명의 어원은 사람의 족보와도 같은 것인데 마치 창시개명당시의 성을 그대로 따르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잘못된 표기를 바로 잡기 위해 학계와 지자체에 수많은 건의를 해왔으며, 일제시대때 「중지도」로 왜곡됐던 노들섬의 제이름을 찾아주는 등 지금까지 김씨가 찾아준 올바른 지명만도 전국적으로 수천개에 달한다.
『지명연구작업은 신개발지의 학교나 도로의 이름을 붙일 때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인간거주역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김씨는 『올해안으로 토지공사에서 개발중인 전국 신도시의 지명에 대한 유래를 담은 책을 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창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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