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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잔다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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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잔다르크

입력
200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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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염하다」는 말을 빼고 밀라 요요비치(25)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블루 라군 2」 「초보영웅 컵스」 등 껄렁한 영화에서 벗는 것을 연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뤽 베송의 「제 5원소」는 영화적 완성도는 차지하고라도, 신성 밀라 요요비치를 세계 영화팬들에게 각인시킨 것만은 확실하다.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는 듯한 허무하고 도발적인 표정의 릴루는 센세이션이었다.아무리 뤽 베송 감독의 작품이라도 「잔 다르크」를 다시 본다는 것은 다소 지겨운 일이다. 그러나 잔 다르크를 밀라 요요비치가 했다면.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라도 하듯 뤽 베송의 잔 다르크는 당연히 그녀의 애국자적 면모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진정한 신자와 광신도, 어쩌면 이 극단적인 두 존재는 피상적으로는 같은 외양을 띨 지도 모른다. 밀라 요요비치는 때론 진정한 성녀처럼, 때론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광신도처럼 자신을 변모시키며 야릇한 잔다르크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마을 로렌.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1339~1453)으로 피폐해진 마을에 영국 병사들이 들이닥친다. 잔을 대신해 처참히 죽어가는 언니. 이때부터 어린 잔은 신의 가호를 갈구한다. 그렇게 그녀는 성령을 만나고, 황태자 샤를르 앞에 나선 17세의 잔은 군사를 달라고 해서 함락 위기에 처한 오를레앙으로 달려간다. 찬란한 승리, 그러나 그녀는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고 이단으로 화형당한다. 이런 기본 줄거리는 이전에 나왔던 영화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세밀하게 만들어진 15세기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배우들의 박진감 넘치는 대규모 전투 장면, 그리고 철구(鐵球)로 맞아 머리가 산산조각 나는 장면 같은 재기발랄한 볼거리, 뤽 베송 특유의 리드미컬한 편집은 고전물이 주는 지루함을 극복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것은 중반까지의 얘기. 잔 다르크는 과연 신에게 봉사한 것일까, 그녀가 본 것은 자신의 욕망이 만들어 낸 환영이 아니었을까,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잔 다르크가 환영으로 자신을 만들어 내는 것을 왜 방치했을까… 수많은 신학적 질문의 상황에 놓인 잔 다르크의 고뇌는 신학 원론을 읽는 것처럼 지루하기 짝이 없다.

샤를 7세 역의 존 말코비치, 잔 다르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는 환상속의 인물 콘시언스 역의 더스틴 호프먼 같은 명배우들의 연기도 영화적 재미를 보태기는 한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영국군에게 보낸 대포알에 「HELLO」라는 글자가 써진 장면은 영어를 대사로 한 프랑스 배경의 영화가 얼마나 현실감을 떨어뜨리는지 극단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이다. 감독 뤽 베송과 밀라 요요비치의 특별한 관계(「제5원소」때 만나 결혼했고, 이 영화 직전 헤어졌다)가 아니더라도 이 영화가 「그들만의 영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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