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를 잇는 험한 능선. 이틀이 멀다 하고 눈이 내렸다. 제설작업을 한 찻길을 제외하고 온 세상이 눈 속에 잠겼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듯한 하얀 세상에서 깊은 맛으로 영글어가는 것이 있다. 계절의 진객 황태다.대관령(평창군 도암면 횡계리)과 진부령(인제군 북면 용대리)은 황태의 고장. 지금 눈 속 곳곳에 널려 있는 덕장에서 수 많은 황태가 하늘을 보며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명태를 햇볕에 단시간(한달 남짓)에 말린 것이 북어라면, 황태는 눈과 추위 속에서 3개월 이상을 건조한 것. 건조라기 보다 숙성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깊은 맛은 물론 우수한 약재가 갖는 갖가지 효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황태의 고향은 함경도 원산. 망태라 불리웠다. 분단 이후 그 곳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기후가 비슷한 진부령과 대관령에 덕장을 만들었다. 건조기술이 발달하고 상품가치가 알려지면서 70년대 중반부터 북어와 구분하기 위해 황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질 좋은 황태가 나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밤 평균기온이 두 달 이상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야하고 맑은 냇물이 있어야 한다.
12월 말께 동해안 포구에서 명태의 할복(배 가르기)으로 황태 작업은 시작된다. 알은 명란젓, 창자는 창란젓 공장으로 보내지고 속이 빈 명태는 트럭에 실려 산 꼭대기 마을로 올라온다. 마을에서는 명태를 맑은 냇물에 하룻밤 담근다.
불순물과 피를 빼기 위해서이다. 횡계리에서는 동강 최상류 중 하나인 송천이, 용대리에서는 설악산을 훑고 내려온 북천이 이 역할을 담당한다.
민물에서 하룻밤을 잔 명태는 두 마리씩 줄에 엮여 하늘을 바라보며 덕장에 널린다. 덕장은 어른 넙적다리 정도의 굵은 나무를 묶어 2층으로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다. 명태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솜방망이처럼 건조돼 간다.
따뜻한 날이 계속되면 수분이 한꺼번에 빠져 상품가치가 적은 깡태가 되고, 날씨가 도와주면 가장 맛이 좋다는 노랑태가 된다.
그래서 황태덕장은 「하늘과의 동업」이라고 한다. 잘 마른 황태는 더덕처럼 살이 부슬부슬해져 「더덕북어」로도 불린다. 간장해독, 숙취제거, 공해해독, 노폐물제거 등에 좋고 연탄가스에 중독됐을 때에도 특효가 있다.
황태는 미각 뿐 아니라 시각까지 유혹하는 멋쟁이다. 하얀 골짜기에 수백㎙씩 뻗쳐있는 황태덕장은 설국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동해 바다 깊은 곳에서 헤엄치다 높은 산중에 줄지어 매달린 모습이 묘한 감흥마저 자아낸다.
황태가 익어가는 곳은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대관령은 누구나 인정하는 눈의 고장. 선자령이나 대관령 옛 길에서의 눈꽃트레킹을 메인 여행코스로 정하고, 돌아올 때에 횡계에 들른다면 금상첨화이다.
용평 스키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 곳을 거쳐야 스키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용대리는 북설악의 중심이다. 백담사, 십이선녀탕 등 유명 등산 코스가 널려 있다. 알프스 스키장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대관령=권오현기자
koh@hk.co.kr
■[차창 밖 풍경] 정선군 구절리 종량동 가는길
강원 정선군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완행열차 비둘기호가 있다. 정선읍에서 북면 구절리까지 객차 한 량만을 달랑 매달고 다닌다. 주로 학생들의 통학을 위한 이 「미니열차」가 갑자기 인기 관광상품으로 부상해 주말이면 관광객 차지가 돼 버렸다.
산골마을 구절리는 그 덕에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열차를 타고 구절리에 다녀 온 외지인들은 기찻길이 끝나는 곳까지만을 기억한다. 사실 구절리의 속살은 기찻길보다 더 깊은 계곡에 숨겨져 있다.
구절리로 진입하는 도로는 「정선 아라리(아리랑)」의 발상지로 유명한 아우라지에서 시작한다. 정선읍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여량쪽으로 달리다 보면 여량1교 직전에 왼쪽으로 주유소가 있고 「아우라지 관광농원」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서 약 8㎞를 직진하면 기찻길이 끝나는 구절리역에 닿는다. 역에서 일반 승용차로 더 진입할 수 있는 길은 3㎞ 남짓.
노추산(1,322㎙)의 아랫마을인 종량동까지이다. 절반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고 절반은 잘 다듬어진 비포장도로이다. 짧은 길이지만 강원도 산비탈의 계곡미를 집약적으로 느낄 수 있다. 오장폭포와 송천이 그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구절리역에서 약 1.5㎞ 지점에 위치한 오장폭포는 하늘에서 바로 물이 떨어지는 듯한 신비한 느낌을 준다. 노추산의 연봉인 오장산 자락을 흐르던 물이 갑자기 100㎙에 가까운 돌벼랑을 만나 수직으로 떨어진다. 지금은 거대한 얼음벽이 되어 있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송천은 기암을 끼고 흐른다. 주변에 석회암이 많은 탓인지 바닥이 하얗다. 하얀 바닥을 흐르는 푸른빛 물은 깊고 얕음에 따라 색의 농도가 확연하다. 이런 물빛을 「크리스털 블루」라고 표현한다.
아쉽지만 종량동에서 차를 돌려야 한다. 길은 인접한 강릉시 왕산면까지 이어지지만 4륜 구동차에 훌륭한 운전솜씨가 뒷받침돼야 주파할 수 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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