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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막전막후] 사라지는 풍습의 화려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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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막전막후] 사라지는 풍습의 화려한 등장

입력
2000.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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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성 살피시어 해상 변덕 천액 방지에 가가호호 만선풍어면 유궁하게 동락하오니, 부디 굽어 살피소서』 때아닌 동해안 해신당 당제가 서울 바닥에서 푸짐하게 올라간다. 극단 예삶의 「홍어」는 해안 마을의 삶을 갖가지 볼거리 들을거리로 되살려 놓는다.가장 큰 미덕은 토속성과 현대성을 절묘하게 함께 빚어 올린 데 있다. 『우주적, 세계적 이야기보다는 뒷전에 숨어버린 우리 전통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작가 김태수씨의 말대로다. 당신제, 영혼결혼식 등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 버린 전통 풍습들을 소극장 무대가 가득차도록 화려하게 재현한다.

그렇다고 전통에만 안주하지 않고, 오늘의 모습도 적절히 수용한다. 작품 사이사이 등장하는 남녀 코러스는 무가(巫歌)와 테크노가 어우러진 음악에 맞춘 선정적 이인무(二人舞·Pas de deux)로 젊은이의 뜨거운 사랑을 암시한다. 당제를 준비하는 어부들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져 있다.

연극의 줄기는 마을 당제. 물에 빠져 죽은 여자의 원혼을 달래려 남근목을 깎아 제물로 바치는 일종의 풍어제이다. 그를 위해 제주로 뽑혀 내려 온 마을의 수재 형욱이 모처럼 만난 소꿉친구 영선을 범한다. 그것도 신당앞에서.

당제는 무사히 치러졌지만, 이튿날 출어 나간 배가 뒤집힌다. 마을 사람들은 절름발이 명구가 형욱의 욕을 하고 다녀 부정탔다며 명구를 죽도록 팬다. 형욱은 이튿날 스포츠카를 몰고 서울서 내려 온 아가씨와 함께 떠나버리고, 영선은 자신을 위로하는 명구를 피하려다 바다에 빠져 죽는다. 사정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치러 준 것이 영혼 결혼식.

극의 사실성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박수 무당의 열연으로 한껏 고조된다. 서도소리의 명인 박정욱을 사사한 배우 김재호(32)가 읊어대는 황해무가 중 산염불 대목. 한껏 청승맞은 그의 사설은 극장 분위기를 묘하게 돋운다. 인간문화재 이애주류의 살풀이 연습으로 다져진 날렵한 몸맵시가 볼만.

무대는 좀체 보기 힘든 남근숭배(phallicism) 무속의 현장이기도 하다. 서낭당 옆 새끼줄에 푸짐하게 꿰어져 있고, 공연장 입구에도 진열돼 있는 남근목들이 그것. 일부 관객들은 호기심에 이를 가지고 가기도 한다. 극단 예삶은 매주 목요일 오후 4시 장애인 단체 무료 관람도 펼치고 있다. 27일까지 동숭아트센터소극장.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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