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는 2일 수·목 드라마 「불꽃」 첫회분을 방송하면서 같은 시간대의 MBC 「진실」 의 높은 시청률을 의식했다. 「진실」 시청자들을 자신의 드라마로 끌어들이기 위해 방송 시간을 무려 70분으로 잡았다. 시청자들이 60분짜리 「진실」 이 끝난 후 10분이라도 「불꽃」 을 보고 나면 다음 방송에서 채널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MBC와 KBS의 일일드라마 「날마다 행복해」와 「해뜨고 달뜨고」 가 벌이는 신경전 역시 뜨겁다. 두 드라마는 처음에 오후 8시 30분에 시작했으나 KBS가 5분 빨리 시간대를 앞당기자, MBC 역시 같은 시간대로 옮겼다. 편성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사례다.
■편성국은 방송사 전략사령부
프로그램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편성을 잘못하면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다. 프로그램 제작국이 야전사령부라면 편성국는 전략사령부다. 편성국은 크게 시간대별, 주간별, 월별로 방송 시간대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프로그램 기획, 문제점 진단, 포맷 개발에 이르기까지 시청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방송사에선 매우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다. 방송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10~30명 정도의 PD들이 편성을 맡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외국은 편성의 중요성을 감안해 편성담당 사장을 따로 두는 경우가 많다.
■편성국 24시
편성국 소속 직원들은 무엇보다 프로그램 성격, 형식, 내용 뿐만 아니라 시청자의 시청형태, 타방송사의 프로그램 배치, 외국 동향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MBC 안광한 편성기획부장은 『여론조사, 시청률자료, 정기적인 프로그램 점검 등 편성을 위한 다각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편성국 사람들은 편성능력뿐만 아니라 제작 감각까지 갖춰야 한다』고 설명한다.
예전에는 프로그램을 대폭 손질하는 봄·가을 개편에 맞춰 일을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수시로 부분개편을 해야 하고 타방송사의 편성 정보를 빨리 파악해 대응해야 하므로 늘 긴장하며 일을 하고 있다. 또 PC통신, 인터넷 등을 통해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있어 편성국의 역할은 날로 막중해지고 있다.
■프로그램을 죽이고 살리고
편성국은 프로그램을 기획한 뒤 제작국과 협의해 내용과 포맷을 결정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면 다시 편성국에서 검토해 문제점을 보완한다. 교양이나 오락 프로그램일 경우 일단 정규 편성에 앞서 파일럿(시험용) 프로그램 형식으로 방송한 뒤 시청자와 언론의 반응이 좋으면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한다.
반대로 문제가 많은 프로그램을 폐지할 때도 편성국의 입김은 엄청나다. 기존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와 언론의 비판이 제기되면 문제점을 파악해 제작국에 개선을 지시한다. 만약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프로그램 폐지를 결정한다. 지난해 가을개편때 등장한 KBS 「퀴즈 크래프트」의 경우. 같은 시간대 MBC 「퀴즈가 좋다」에 비해 시청률이 크게 뒤지자 여러차례 문제점을 보완, 방송했으며 이후에도 계속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자 방송 3개월 만인 1월 말 프로그램 자체를 없앴다.
■편성때문에 웃고 울다
KBS 「개그 콘서트」 박중민 PD는 1월 중순 고민에 빠졌다. 편성국이 방송시간을 토요일 오후 9시에서 오후 6시 50분으로 옮기라는 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개그 콘서트」 를 신설해 20%대의 높은 인기를 얻었지만 방송시간대의 변경은 인기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개그 콘서트」는 다행히 시간대를 옮긴 뒤에도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는 성공적인 경우지만 시간대를 옮겨 시청자의 외면을 받은 프로그램도 부지기수이다. 이로 인해 제작국 PD들이 좋은 방송시간대를 확보하기 위해 편성국을 상대로 벌이는 노력은 치열하다.
■편성의 문제점
방송 편성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점은 편성이 시청률에 너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공익성에 관계없이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은 광고 단가가 높은 프라임 타임대(오후 8~10시)에 전진 배치하고 국악·환경이나 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 등은 새벽이나 심야에 주로 편성하고 있다. 심지어 이런 공익 프로그램은 아예 편성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편성은 시청자와의 약속임에도 불구하고 타방송사를 의식해 수시로 방송사 편의대로 편성을 변경하는 것은 개선돼야 할 점이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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