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살때 우연히 넘어지면서 왼팔 성장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러져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깁스한 부분이 무거워 또 넘어지며 오른팔의 같은 부위마저 부러졌다.그 일 후 아버지께서는 남자는 군대에 가야한다면서 열일곱살이 될 때까지 매년 방학을 이용해 교정수술을 시켜주셨지만 지금까지도 바로 펴지지가 않아 부모님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나 역시 더 이상 전신마취를 하면서 수술을 받는다는 것이 이만저만한 고통이 아니었다.
열여덟이 되던 해 아버지께서는 나를 불러놓고 더 이상 수술을 시켜줄 형편도 못되니 너 스스로의 운동요법으로 조금이나마 굽어진 팔을 펴보라고 수술중단 선언과 함께 운동기구인 아령을 사오셨다.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않고 운동을 하고 있긴하지만 좀처럼 펴지지 않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추석무렵 우리 동네 통장님께서 우리집을 안타깝게 여기셨는지 어머니에게 나를 장애자로 등록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씀을 하셨다.
저녁에 퇴근하신 아버지께 낮에 있었던 통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해드렸다. 아버지는 무슨 소리냐며 버럭 화를 내시며 『애비가 공무원인데 자식을 장애자등록을 시켜 각종 혜택을 보게 하려는 의도냐, 더이상 말도 꺼내지말고 그런 통장부터 교체시켜야한다』라며 화를 내셨다. 내 기억에는 아마 그때처럼 아버지의 화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던 것같다.
그 일로 우리집에는 예정에도 없던 가족회의가 열렸다. 아버지께서는 나와 내 동생을 앉혀 놓으시더니 세상에는 너희보다 훨씬 고통스런 장애자가 많지만 골고루 헤택을 못보고 있다며, 혼자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으니 장애자등록을 하는 것은 공무원생활을 22년째 하고 있는 아버지를 우롱하는 것이라 하시며 너희는 항상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다시 한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떳떳한 사회인으로 생활할 때 아버지의 굳은 국가관, 외길 인생을 본받을 수 있을지. 또한 나는 미래의 자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지. 새천년을 맞아 새로운 각오가 생기는 묘한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서울 오산고2·유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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