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있다. 특히 인사행정에서는 이것이 거의 철칙에 가깝다. 일정한 근무기간이 지나면 승진시켜주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고, 그것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농업사회와 산업사회에서는 환경변화의 속도가 느리므로 경험이 많을수록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그래서 주요 직무에 두루 경력을 갖춘 사람이 승진에 유리했고 승진에 따른 권한과 보수가 주어졌다.「연공」과「직위」와「보수」라는 세 가지 요소가 튼튼한 삼위일체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이 삼위일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의한 급속한 환경변화 때문에 경험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역량을 갖추었다고 인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삼위일체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히려 인터넷 분야는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더 유리한 세계이다. 모든 분야에 창의력이 요구되는 사회에서 관료조직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행정서비스에도 경험보다는 창의력을 더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공서열주의 인사관행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공무원사회의 승진적체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정기간 근무한 후에는 승진시켜줘야 공무원들의 사기가 진작된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연공서열과 승진적체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 되었다. 서구에서는 승진적체라는 용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연공이라는 것도 능력과 관련되어 있을 때에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일정기간만 지나면 승진시켜줘야 하는 불합리한 인사관행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어떤가?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승진은 때가되면 시켜 주어야 하는 것으로 관행화 되어 있으니, 할 수 없이 각종 연수나 파견이라는 명목으로 「인공위성」을 띄우게 된다. 직원의 사기진작을 위한 승진압력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그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공위성을 띄우는 것도 한계에 달하면, 각종 산하기관이나 단체에 「낙하산」을 보낸다. 전문성이 없는 인사일지라도 산하기관에 내려보내서 부하직원들의 승진압력을 해결해 낸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라도 인사숨통을 터주어야 유능한 관리자라고 평가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이것만이 아니다. 인공위성이나 낙하산으로도 해결할 수 없게 되자, 이른바 관변단체를 만들어 위인설관(爲人設官)을 하거나 직책과 직위를 분리해서 운영하기도 한다. 직위의 과도한 인플레이션은 그래서 이루어진다. 승진인사가 오히려 공무원들을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것은 능력주의 인사행정을 구현하면 된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주의라는 것은 상관이 부하의 능력을 자의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아니다. 직무가 요구하는 역량이 무엇인지를 과학적인 방식으로 도출하여, 그 직무에 적합한 역량을 갖춘 공무원을 선발·배치하는 방식을 제도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이것을 「능력주의 인사관리모형」(Competency Model)이라고 말한다.이러한 합리적인 모형을 구축함으로써 연공서열식 인사관행을 파괴하지 않는 한 관료조직의 승진적체와 도덕적 해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최동석 한국은행 직무평가팀장 tschoe@bo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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