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특집극 '백정의 딸'우리는 수십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렸다. 뿌리는 보지 못하고 꽃만을 본 지난 세월이었다. 설날 한번쯤 우리의 뿌리, 그리고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어떨까?
인터넷을 통해 세배를 대신하고 호텔방에서 차례상을 차리는 첨단과 편리함의 세상이다. SBS가 6일 오후 9시 50분부터 두시간 동안 2부작으로 방송하는 「백정의 딸」(박정란 극본, 이현직 연출)은 우리의 지난(至難)했던 삶의 편린들과 우리를 오늘에 있게 한 과거를 들여다 보는 설 특집 드라마다.
인간이면서 인간 이하의 차별대우 속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처절하게 살아야 했던 백정의 아버지를 둔 언년이, 즉 민초들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산업시대에서 상실해가는 가족의 정을 복원하는데 열정을 쏟는 작가 박정란씨는 『이 드라마는 1900년대 초에 백정으로 태어나 주변의 시선과 차별에 꿋꿋하게 대항해 아들을 훌륭한 의사로, 딸을 이화학당의 졸업식 대표학생으로 키워낸 박씨로 알려진 실재 인물을 모티프로 삼았다』고 말했다.
실화의 감동이 녹아있는 「백정의 딸」 은 실제 이야기와 약간 다르게 극화했다. 무대는 1900년 경기도. 천민 중 천민으로 살아야 하고, 비단옷 탕건을 쓸 수 없고, 양반 앞에 담배를 피워서도 안되고, 죽어서도 상여에 실려 저승을 가지 못한 백정, 이돌(이정길)과 그의 딸 언년이(추상미)가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백정 이돌은 자식들도 백정으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의 냉혹함을 어린 딸과 자식에게 주입시킨다. 유약한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순응하며 백정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아버지를 닮은 고집 센 딸, 언년이는 타고난 운명을 거스르는 역경을 택한다. 운명을 강요하는 아버지를 증오하는 언년이. 가슴에 백정 신분을 나타내는 검정천을 달지 않았다고 매를 맞으면서도 『그래도 백정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아버지를 증오하며 자란다.
호열자에 걸린 어머니를 선교사가 살려준 인연으로 언년이는 이화학당에 입학하게 되고 백정의 딸로서 받은 차별과 설움을 공부에 매달리며 잊는다. 백정의 아내로 수모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어머니를 보며 더욱 더 아버지를 미워한다.
그러나 죽음을 눈 앞에 둔 아버지가 다리조차 못 쓰는 모습을 보고 증오는 점차 녹아내린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형(死刑)을 각오하고 평생 모은 돈으로 꽃상여를 만들어 어머니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깨닫는다.
이화학당 졸업생을 대표한 언년이의 답사는 드라마의 마지막을 감동적으로 장식한다. 『우리 아버지는 백정입니다. 저는 백정의 딸입니다. …이 영광을 아버지에게 바칩니다』
주연인 언년이로 출연한 추상미는 『힘들고 어려운 연극인의 길을 걸으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늘 따뜻하게 손잡아 준 아버지(타계한 추송웅)의 모습과 극중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참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돌로 나온 이정길이 한마디 덧붙인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도 끊을 수 없는 것이 자식과 부모의 인연인 것 같습니다』
첨단기계문명의 시대에도 컴퓨터로 대신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드라마 「백정」은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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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드라마 「백정의 딸」
SBS 6일(일) 오후 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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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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