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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날 닮아 미친듯 레슬링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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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날 닮아 미친듯 레슬링 배웠죠"

입력
2000.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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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33)는 안다. 배우로서 자신의 방향을. 그에게 『당신은 어떤 배우냐』고 물어봤다.그의 대답. 『체계적인 연기훈련을 받은 것 아니다. 지역적 적 특성 강하다』

분명 단점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뒤집었다. 체계적이지 않기에 현장중심적이고 감각적인 연기, 지역적 액센트가 강한 독특한 말투로 「송강호 캐릭터」를 창조했다.

그래서 스타일과 형식과 가공미가 강한 작품에서 그는 오히려 자기색깔을 잃어버린다. 그것이 살아날 때 송강호는 영화 속에서 살아있고, 그것이 죽으면 송강호는 영화에서 연기를 한다는 느낌을 준다. 「넘버3」와 「쉬리」가 좋은 경험이었다. 『연기의 중심을 현장에 두고 있기에 오히려 정통리얼리즘에서 출발하는 영화가 나에게는 맞다』

▶'반칙왕'어떤 영화인가…장난스런 웃음 뒷끝 눈물 한방울

그는 웃긴다. 그 「웃음」이 그에겐 리얼리즘이다. 『웃음은 친근감이다. 흔히 보아온 감정들, 그것으로 자기와 주변을 바라볼 수 있다. 완벽한 조각같은 연기가 아니기에 따뜻하다. 괴기와 공포 속에서 나를 보고 웃을 수 있는 이유이다』 「조용한 가족」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감독(김지운)과 다시 손잡고, 「반칙왕」의 주연을 맡았다. 반칙을 전문으로 하는 레슬러로 사회적응을 못하고, 동료와 가족에게 무시당하는 자신의 존재를 회복하려는 은행원 임대호의 자기 사랑.

송강호는 임대호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재주 외모 빼어나지 않지만 힘을 잃지않고 삭막하고 외로운 현실을 딛고 자신을 지켜가려는 모습. 그래서 송강호 30대 굳은 몸으로 미친듯이 레슬링을 배웠다. 하루 6시간씩 두 달간. 구체적 기술을 익혀야 했기에 「쉬리」의 액션보다 세 배는 힘들었다. 『처음 주어진 주연이라 이를 악물고 달려 들었다. 요리조리 따지지 않는 「넘버3」의 「무대포 정신」으로』

96년 「초록물고기」의 단역으로 시작해 4편의 영화를 했지만 6년 동안 연극생활이 가져온 가난, 쌀이 없어 라면으로 가족이 끼니를 때우던 고단함이 아직 그에게 남아있다. 월세가 전세로 바뀐 것 뿐. 『아픈 기억이지만 그때 고생하면서 얻은 경험들을 허무하게 잃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내 연기의 힘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송강호. 변신이 아닌 변화를 위해 그는 다음 인물로 박찬욱 감독의 「JSA(공동경비구역)」에 나올 북한군 중사를 선택했다. 「전사(戰士)적인 북한군」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너무나 평범하고 인간적인 북한군이다. 배우로서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는 전이기 도 하다.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반칙왕'…장난스런 웃음 뒷끝 눈물

헤드록(Headlock). 레슬링의 기술. 팔로 상대의 머리를 조아 고통을 주고 넘어뜨린다. 은행원 임대호(송강호)는 지각하는 날이면 부지점장(송영창)에게 헤드록을 당한다. 「캑캑」거리는 임대호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디 빠져 나와봐. 못 빠져나오지. 세상은 이런거야. 정글. 알았어』 부지점장의 헤드록은, 그러나 반칙이다. 머리가 아닌 목을 조으기 때문에.

「반칙왕」은 이런 반칙이 횡행하는 현대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시민의 저항이자, 자기존재의 확인이다. 그것은 그가 밤이면 이제는 쇠락한 프로레슬러, 더구나 반칙을 전문으로 하는 선수로 변신하는 「이탈」로 나타난다. 정글(사회)보다 더 정글적인 사각의 링에서 반칙을 배우고 써먹으며 그는 스스로 정글에 적응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각의 링에서조차 그는 자신의 우상이자 내면인 울트라 타이거 마스크를 찢기는 상처를 입고 분노한다. 그는 결코 부지점장과의 대결에서 이길 수 없다. 그의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꿈과 환상 속에 머물 수밖에 없다.

순수하고 착하고 따뜻한 인간,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무시당하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웃음으로 드러내는 「조용한 가족」김지운 감독의 솜씨는 탁월하다. 엉뚱함이나 어설픔이 몸에 배인 송강호란 캐릭터, 다분히 역설적인 레슬링이란 소재, 미학적 환상이 아닌 코미디적 환상을 섞어 그는 별나고 재미있으면서도 따뜻하고 애처로운 소시민의 심리와 일상을 담아냈다. 이 영화에서는 아픔조차 가라오케에서 임대호가 좋아하는 동료 여직원(김가연)때문에 행패를 부린 장면처럼 웃지 못할 해프닝이 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최두식(정웅인)을 통해 환상이나 이탈이 아닌 정면대결의 아픔을 대비시키는 능청스러움.

「반칙왕」은 리얼리즘 영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인물은 다분히 희화적이고, 상황은 아이러니로 반복된다. 그러나 이 가볍고 장난스러운 한 편의 코미디에 숨은 세상과 우리의 모습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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