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농(韓農) 한기석 화백의 개인전이 백상기념관(관장 장일희) 주최, 미국 새스코화랑(대표 신동훈) 주관으로 9일부터 18일까지 백상기념관에서 열린다.1952년 미국에 건너간 이후 줄곧 미국에서 활동해 온 한농은 이미 세계 화단에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 「감나무」 는 96년 세계유엔연맹협회 예술 및 우표 프로그램 (WFUNA, Art & Philatelic Program)의 유니세프 창설 50주년 기념 우표로 선정돼 화제를 뿌렸다. 그동안 유니세프 기념우표 작가로 선정된 예술가는 살바도르 달리, 마크 샤갈, 알렉산더 캘더, 로버트 라우쉔버그, 앤디 워홀 등 세계적 화가들로, 한농은 한국작가로는 유일하게 이같은 영예를 안았다.
한농은 미국에서는 30여회 이상의 개인전, 그룹전, 살롱전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으나 국내에서는 1971년 신세계화랑, 75년 국립현대미술관, 86년 대구동아백화점 화랑에서 세차례 개인전을 가졌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거의 15년 만에 그의 간결하면서도 완벽한 회화적 구성의 작품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이번 전시회에는 유니세프 기념우표로 선정됐던 1996년의 「감나무」 연작을 비롯, 최근 제작된 「항아리」 연작까지 모두 40점을 전시한다. 동양적이면서도 추상성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단순한 구도이면서도 관객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사색에 빠져들게 하는 작품들이다.
검은 색 바탕에 흰 보름달, 둥근 달을 가로지르는 나무가지와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붉은 감 하나_ 그의 화면에서 보여주고 있는 「감나무」의 모티프는 단순하기 그지 없다. 색채 역시 검정과 흰색, 그리고 붉은 색 뿐이다. 하지만 유재길 홍익대교수(평론가)는 『그의 추상화에서는 검정 바탕에 흰색 원이 회화의 순수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조형언어가 된다』 면서 『침묵의 바다를 이루는 순색과 단순한 형태, 간결한 구성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색의 깊이를 더해준다』고 말했다. 달과 감나무 외에 「달과 잠자리」 「달과 고양이」 「달과 늑대」 「달과 길」 「달과 산」 등 달과 연결된 다양한 그림들은 고독과 우수를 자아내면서도 오랜 세월, 역경을 헤쳐 온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평화로움 같은 것이 깃들어 있다.
달과 함께 이번 전시회에서는 항아리를 모티프로 한 연작들도 선보인다. 항아리 그림 역시 화려한 꽃병이 아니다. 하지만 검정과 청색, 검정과 회색 등으로 정갈하게 표현된 항아리 그림 속에는 인간의 삶과 죽음이나 선과 악의 이중구조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나의 모든 작품에는 동양 사상이 깃들어 있다. 우주의 신비와 대기만성(大器晩成)을 뜻한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미국에서 서양의 합리주의에 푹 파묻혀 지내오면서도 변함없이 추구해 온 동양사상이다. 이번 전시회에선 미국서 공수해 온 유엔 마크가 찍힌 「감나무」 판화 100매가 한정 판매된다.
송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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