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산업은 창업 초기, 기술력있는 인재 채용을 거의 기대하기 힘들었다. 요즘은 그래도 벤처 열풍때문에 일류대학을 나온 엔지니어들이 나름대로 뜻을 품고 중소 벤처기업에 취직을 하지만 당시만 해도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래서 나는 한 공업고등학교와 자매결연, 공고생을 채용해 일을 가르치기로 방침을 정했다.주위에서는 언제 사람을 키워 쓰느냐고 우려했지만 정해진 틀 안에서만 사고하고 모험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모범생들에게서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창업 4년째인 86년 한 젊은이가 개발팀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좀 괴짜였다. 똘망똘망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고 눈동자는 늘 허튼 곳에 가있었으며 주의가 산만했다. 그래도 인내를 가지고 일을 가르치면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고 결과 또한 신통치 않았다. 솔직히 실수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시 다년간의 프로젝트가 수포로 돌아가 실패와 좌절을 겪고 있었으며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핸들러장비에 도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핵심기술은 둘째치더라도 기계구조조차 파악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움이 컸다. 설계도면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것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매일 빈둥대고 투덜거리기만 하는 줄 알았던 그 젊은이가 나에게 불쑥 종이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펴보니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고대하던 핸들러 설계도면이었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그러자 젊은이의 대답은 또 한번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제가 그렸는데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부족한 구석도 있었지만 충분히 보완할 수 있어 보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젊은이의 머리 속에는 항상 설계도면이 그려져 있었다. 한번 본 장비는 머릿속에서 도면을 그리고 나름대로 수정까지 해보는 특이한 능력과 뛰어난 상상력, 구성력을 가진 녀석이었다. 결국 우리는 핸들러 개발에 성공했다. 일본의 경쟁업체로부터 도면을 빼내 갔다는 항의를 받기도했지만 전혀 신경쓸 바가 아니었다.
그 젊은이는 이제 컨셉설계팀장으로 우리 회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있다. 꼭 이 경우가 아니더라도, 별 신통치 않아 보이던 젊은이가 자신의 분야에 열정을 갖고 최고의 엔지니어를 향해 정진해가는 모습을 보면 나는 큰 기쁨을 느끼게 된다.
/정문술·미래산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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