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는 「세속주의」, 곧 정치와 종교의 분리다. 정교 분리의 원칙은 유럽식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의 헌법에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헌법 20조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와 분리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사실 이 조항은 서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의 헌법 체계를 들여오면서 다소 형식적으로 삽입된 것이기 쉽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종교는 유럽에서 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중세 이후의 유럽사는 교권과 황권(내지는 왕권) 사이의 박진감 넘치는 다툼을 여러 장면에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민혁명으로 절대 군주나 귀족 계급이 몰락한 뒤에도 교회는 의연히 힘을 잃지 않고 세속에 간섭해 왔다. 프랑스 혁명은 귀족의 날개를 단숨에 꺾어버렸지만, 교회는 귀족 계급보다도 더 격렬하게 혁명에 저항했다. 1789년의 대혁명에서 시작해 1830년의 7월 혁명, 1848년의 2월 혁명 그리고 1871년의 파리 코뮌을 거쳐서 19세기 말∼20세기 초 제3공화국의 「아름다운 시절」(벨 에포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혁명의 기나긴 장정은 정치나 교육 같은 세속의 영역에서 교회의 입김을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동유럽의 옛 정권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1989년 이후, 체제로서의 사회주의에 믿음을 지닌 사람은 크게 줄었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떠나버린 자리가 비어있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민족주의와 종교적 열정이다. 지금의 동유럽에서 종교는 뚜껑을 내동댕이치며 상승하는 증기 에너지다. 포스트 공산주의 시대의 유고를 만신창이로 만든 보스니아 내전이나 코소보 내전은 종교 전쟁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보스니아에서 그 전쟁은 이슬람교와 정교(세르비아계)와 가톨릭(크로아티아계) 사이의 싸움이었고, 코소보에서 그것은 이슬람교(알바니아계)와 정교(세르비아계)의 싸움이었다.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의 경우처럼 전쟁을 거쳤든, 아니면 슬로베니아의 경우처럼 두루뭉술하게 진행됐든, 유고 연방의 해체 자체가 어떤 측면에서는 종교라는 동력에 실려 이뤄진 것이었다.
실상 우리가 21세기 세계의 불길한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문명의 충돌을 거론할 때, 그 문명의 충돌이란 본질적으로 종교들 사이의 충돌이다. 다시 말해 충돌의 커다란 주체들이 흔히 예견되듯 서방과 아랍과 동아시아라면, 그 충돌이란 기독교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과 유교 문명권(유교를 하나의 유사 종교라고 본다면)이다. 이슬람권의 많은 사회에서는 아직도 정교 분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화정을 택하고 있는 이란 같은 나라가 역설적으로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완고한 신정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슬람권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세속의 일이 흔히 종교에 포섭돼 있다.
그러나 세속주의가 깊이 뿌리내린 듯이 보이는 사회들이라고 해서 종교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예컨대 미국 대통령은 한 손을 성경 위에 얹고 취임 선서를 하고, 성직자들을 초대하여 기도를 올린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도 이따금 조찬 기도회라는 걸 올렸다. 아일랜드에서 이혼이 합법이 된 것은 겨우 5년 전이다. 그 사회의 일상사를 지배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힘 때문이다. 로마 교황청은 지금도 낙태를 합법화하지 못하도록 가톨릭 국가 정부들에 압력을 행사한다.
이슬람 국가들이나 서방의 기독교 국가들에 비해서 종교로부터 더 독립적으로 보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종교는 여러가지 양상으로 세속의 일에 간섭한다. 실은 세계 여러 곳에서 수입된 종교들이 한국에서는 기묘하게도 근본주의적 편향을 띠게 돼,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 또는 그 종교 내부에서 심하게 충돌한다. 단군상의 목이 잘리거나 불상이 훼손되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 특정한 교파나 그 교파 지도자의 부패나 여타의 일탈 행위를 보도하는 언론기관은 흔히 신도들의 물리적 공격 목표가 된다. 새 천년이 밝았어도 종말론은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한국 최대의 불교종단인 조계종은 내분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이런 것들은 일부 이단 종파들의 종교적 일탈일 뿐 정통 교파의 종교라는 것은 본디 거룩하고 너그러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교회의 역사는 보여준다. 기독교의 역사는 피로 얼룩진 역사다. 십자군 전쟁이나 신구교 간의 종교 전쟁은 기독교의 역사의 수많은 피흘림 가운데 도드라진 예일 뿐이다. 유럽인들은 종교를 앞세워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정복한 뒤 수많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화했다. 여호와는 모세에게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불관용」을 선언했다.
그러나 유대_기독교적 신만 질투심 많은 신은 아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종교의 신은 질투심 많은 신이다. 너그러운 신은 신이 아니다. 불교나 유교가 내세우는 동양적 세계관이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까운 것은, 그런 질투심 많은 신이 거기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배타성은 종교의 본질적 부분 가운데 하나다. 기존 종교의 신학적 틀 안에서 경전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그런 배타성을 줄이고 다른 종교에 대한 너그러움을 늘리는 것은 세속주의의 공간을 넓혀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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